한계령을 위한 연가 /문정희 한계령을 위한 연가 / 문정희 한겨울 못 잊을 사람하고 한계령쯤을 넘다가 뜻밖의 폭설을 만나고 싶다. 뉴스는 다투어 수십 년 만의 풍요를 알리고 자동차들은 뒤뚱거리며 제 구멍들을 찾아가느라 법석이지만 한계령의 한계에 못 이긴 척 기꺼이 묶였으면. 오오, 눈부신 고립 사방이 온통.. ♣ 산마을 詩情 산책/한국대표시인이 추천한 애송시100편 2017.01.27
박꽃 /신대철 박꽃 - 신대철 박꽃이 하얗게 필 동안 밤은 세 걸음 이상 물러나지 않는다 벌떼 같은 사람은 잠 들고 침을 감춘 채 뜬소문도 잠 들고 담비들은 제 집으로 돌아와 있다 박꽃이 핀다 물소리가 물소리로 들린다 ♣ 산마을 詩情 산책/한국대표시인이 추천한 애송시100편 2017.01.27
긍정적인 밥 /함민복 긍정적인 밥 함민복 시(詩) 한 편에 삼만 원이면 너무 박하다 싶다가도 쌀이 두 말인데 생각하면 금방 마음이 따뜻한 밥이 되네. 시집 한 권에 삼천 원이면 든 공에 비해 헐하다 싶다가도 국밥이 한 그릇인데 내 시집이 국밥 한 그릇만큼 사람들 가슴을 따뜻하게 덥혀 줄 수 있을까 생각하.. ♣ 산마을 詩情 산책/한국대표시인이 추천한 애송시100편 2017.01.27
우리 오빠와 화로 /임화 우리 오빠와 화로 임화 사랑하는 우리 오빠 어저께 그만 그렇게 위하시던 오빠의 거북 무늬 질화로가 깨어졌어요 언제나 오빠가 우리들의 ‘피오닐’ 조그만 기수라 부르는 영남(永南)이가 지구에 해가 비친 하루의 모―든 시간을 담배의 독기 속에다 어린 몸을 잠그고 사온 그 거북 무늬.. ♣ 산마을 詩情 산책/한국대표시인이 추천한 애송시100편 2017.01.27
어떤 적막 /정현종 어떤 적막 정현종 / 시인 좀 쓸쓸한 시간을 견디느라고 들꽃을 따서 너는 팔지를 만들었다. 말없이 만든 시간은 가이없고 둥근 안팎은 적막했다. 손목에 차기도 하고 탁자 위에 놓아두기도 하였는데 네가 없는 동안 나는 놓아둔 꽃팔찌를 바라본다. 그리고 우주가 수렴되고 쓸쓸함은 가이.. ♣ 산마을 詩情 산책/한국대표시인이 추천한 애송시100편 2017.01.27
소 /김기택 소 김기택 소의 커다란 눈은 무언가 말하고 있는 듯 한데 나에겐 알아들을 수 있는 귀가 없다 소가 가진 말은 다 눈에 들어 있는 것 같다 말은 눈물처럼 떨어질 듯 그렁그렁 달려 있는데 몸 밖으로 나오는 길은 어디에도 없다 마음이 한 움큼씩 뽑혀나오도록 울어보지만 말은 눈 속에서 꿈.. ♣ 산마을 詩情 산책/한국대표시인이 추천한 애송시100편 2017.01.27
사라진 손바닥 /나희덕 사라진 손바닥 나희덕 처음엔 흰 연꽃을 열어보이더니 다음엔 빈 손바닥만 푸르게 흔들더니 그 다음엔 더운 연밥 한 그릇 들고 서 있더니 이제는 마른 손목마저 꺾인 채 연못 속에 거꾸로 처박히고 말았네 수많은 창槍을 가슴에 꽂고 연못은 거대한 폐선처럼 서서히 가라앉고 있네 저 바.. ♣ 산마을 詩情 산책/한국대표시인이 추천한 애송시100편 2017.01.27
순은(純銀)이 빛나는 이 아침에 /오탁법 순은(純銀)이 빛나는 이 아침에 - 오탁번 순은이 빛나는 이 아침에 눈을 밝으면 귀가 맑게 트인다. 나무가지마다 순은의 손끝으로 빛나는 눈내린 숲길에 멈추어, 멈추어 선 겨울 아침의 행인들. 원시림이 매몰될 때 땅이 꺼지는 소리, 천년동안 땅에 붙혀 딴딴한 석탄으로 변모하는 소리, .. ♣ 산마을 詩情 산책/한국대표시인이 추천한 애송시100편 2017.01.26
산정 묘지 /조정권 산정 묘지 - 조정권 겨울 산을 오르면서 나는 본다. 가장 높은 것들은 추운 곳에서 얼음처럼 빛나고, 얼어붙은 폭포의 단호한 침묵. 가장 높은 정신은 추운 곳에서 살아 움직이며 허옇게 얼어터진 계곡과 계곡 사이 바위와 바위의 결빙을 노래한다 간밤의 눈이 다 녹아버린 이른 아침. 山.. ♣ 산마을 詩情 산책/한국대표시인이 추천한 애송시100편 2017.01.26
산문에 기대어 /송수권 산문에 기대어 송수권 누이야 가을산 그리메에 빠진 눈썹 두어 날을 지금도 살아서 보는가 정정한 눈물 돌로 눌러 죽이고 그 눈물 끝을 따라가면 즈믄 밤의 강이 일어서던 것을 그 강물 깊이깊이 가라앉은 고뇌를 말씀들 돌로 살아서 반짝여오던 것을 더러는 물속에서 튀는 물고기같이 .. ♣ 산마을 詩情 산책/한국대표시인이 추천한 애송시100편 2017.01.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