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미한 옛사랑의 그림자 /김광규 희미한 옛사랑의 그림자 김광규 4.19가 나던 해 세밑 우리는 오후 다섯시에 만나 반갑게 악수를 나누고 불도 없이 차가운 방에 앉아 하얀 입김 뿜으며 열띤 토론을 벌였다 어리석게도 우리는 무엇인가를 정치와는 전혀 관계없는 무엇인가를 위해서 살리라 믿었던 것이다 결론 없는 모임을.. ♣ 산마을 詩情 산책/한국대표시인이 추천한 애송시100편 2017.02.11
해바라기의 비명(碑銘) /함형수 해바라기의 비명(碑銘) - 청년 화가 L을 위하여 함형수 나의 무덤 앞에는 그 차가운 비(碑)ㅅ돌을 세우지 말라. 나의 무덤 주위에는 그 노오란 해바라기를 심어달라. 그리고 해바라기의 긴 줄거리 사이로 끝없는 보리밭을 보여달라. 노오란 해바라기는 늘 태양같이 태양같이 하던 화려한 나.. ♣ 산마을 詩情 산책/한국대표시인이 추천한 애송시100편 2017.02.10
일찍이 나는 /최승자 일찍이 나는 최승자 일찍이 나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마른 빵에 핀 곰팡이 벽에다 누고 또 눈 지린 오줌 자국 아직도 구더기에 뒤덮인 천년 전에 죽은 시체. 아무 부모도 나를 키워 주지 않았다 쥐구멍에서 잠들고 벼룩의 간을 내먹고 아무 데서나 하염없이 죽어 가면서 일찍이 나는 아무.. ♣ 산마을 詩情 산책/한국대표시인이 추천한 애송시100편 2017.02.09
조국 /정완영 조 국 정완영 행여나 다칠세라 너를 안고 줄 고르면 떨리는 열 손가락 마디마디 에인 사랑 손닿자 애절히 우는 서러운 내 가얏고여. 둥기둥 줄이 울면 초가삼간 달이 뜨고 흐느껴 목 메이면 꽃잎도 떨리는데 푸른 물 흐르는 정에 눈물 비친 흰 옷자락. 통곡도 다 못하여 하늘은 멍들어도 .. ♣ 산마을 詩情 산책/한국대표시인이 추천한 애송시100편 2017.02.07
절벽 /이상 절벽 / 이상 李箱 - 1936 꽃이보이지않는다. 꽃이향기롭다. 향기가만개한다. 나는거기묘혈을판다. 묘혈도보이지않는다. 보이지않는묘혈속에나는들어앉는다. 나는눕는다. 또꽃이향기롭다. 꽃은보이지않는다. 향기가만개한다. 나는잊어버리고재차거기묘혈을판다. 묘혈은보이지않는다. 보.. ♣ 산마을 詩情 산책/한국대표시인이 추천한 애송시100편 2017.02.05
마음의 수수밭 /천양희 마음의 수수밭 천양희 마음이 또 수수밭을 지난다 머위잎 몇장 더 얹어 뒤란으로 간다 저녁만큼 저문것이 여기 또 있다 개밥바라기 별이 내 눈보다 먼저 땅을 들여다 본다 세상을 내려놓고는 길 한쪽도 볼수 없다 논둑길 너머 길 끝에는 보리밭이 있고 보릿고개를 넘은 세월이 있다 바람.. ♣ 산마을 詩情 산책/한국대표시인이 추천한 애송시100편 2017.02.03
이탈한 자가 문득 /김중식 이탈한 자가 문득 김중식 우리는 어디로 갔다가 어디서 돌아왔느냐 자기의 꼬리를 물고 뱅뱅 돌았을 뿐이다 대낮보다 찬란한 태양도 궤도를 이탈하지 못한다 태양보다 냉철한 뭇별도 궤도를 이탈하지 못하므로 가는 곳만 가고 아는 것만 알 뿐이다 집도 절도 죽도 밥도 다 떨어져 빈 몸으.. ♣ 산마을 詩情 산책/한국대표시인이 추천한 애송시100편 2017.02.02
의자 /이경록 의자 - 이정록 병원에 갈 채비를 하며 어머니께서 한 소식 던지신다. 허리가 아프니까 세상이 다 의자로 보여야 꽃도 열매도 그게 다 의자에 앉아 있는 것이여 주말엔 아버지 산소에 좀 다녀와라 그래도 큰애 네가 아버지한테는 좋은 의자 아녔냐 이따가 침 맞고 와서는 참외밭에 지푸라기.. ♣ 산마을 詩情 산책/한국대표시인이 추천한 애송시100편 2017.02.02
섬진강1 /김용택 섬진강1 김용택 가문 섬진강을 따라가며 보라 퍼 가도 퍼 가도 전라도 실핏줄 같은 개울물들이 끊기지 않고 모여 흐르며 해 저물면 저무는 강변에 쌀밥 같은 토끼풀꽃, 숯불 같은 자운영꽃 머리에 이어주며 지도에도 없는 동네 강변 식물 도감에도 없는 풀에\ 어둠을 끌어다 죽이며 그을.. ♣ 산마을 詩情 산책/한국대표시인이 추천한 애송시100편 2017.02.02
눈물 눈물 ― 김현승 더러는 옥토(沃土)에 떨어지는 작은 생명이고저…… 흠도 티도 금가지 않은 나의 전체(全體)는 오직 이뿐! 더욱 값진 것으로 드리라 하올 제, 나의 가장 나아종 지닌 것도 오직 이뿐! 아름다운 나무의 꽃이 시듦을 보시고 열매를 맺게 하신 당신은, 나의 웃음을 만드신 후에 .. ♣ 산마을 詩情 산책/한국대표시인이 추천한 애송시100편 2017.02.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