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대 등본 /신용묵 갈대등본 신용묵 무너진 그늘이 건너가는 염부 너머 바람이 부리는 노복들이 있다 언젠가는 소금이 雪山처럼 일어서던 들 누추를 입고 저무는 갈대가 있다 어느 가을 빈 둑을 걷다 나는 그들이 통증처럼 뱉어내는 새떼를 보았다 먼 허공에 부러진 촉끝처럼 박혀 있었다 휘어진 몸에다 화.. ♣ 산마을 詩情 산책/한국대표시인이 추천한 애송시100편 2017.03.04
방심 /손택수 방심 손택수 한낮 대청마루에 누워 앞뒤 문을 열어 놓고 있다가, 앞뒤 문으로 나락드락 불어오는 바람에 겨드랑 땀을 식히고 있다가, 스윽, 제비 한 마리가, 집을 관통했다 그 하얀 아랫배, 내 낯바닥에 닿을 듯 말 듯, 한순간에, 스쳐지나가버렸다 집이 잠시 어안이 벙벙 그야말로 무방비.. ♣ 산마을 詩情 산책/한국대표시인이 추천한 애송시100편 2017.03.04
모란이 피기까지는 /김영랑 모란이 피기까지는 김영랑 모란이 피기까지는 나는 아직 나의 봄을 기다리고 있을 테요 모란이 뚝뚝 떨어져 버린 날 나는 비로소 봄을 여읜 설움에 잠길 테요 오월 어느날 그 하루 무덥던 날 떨어져 누운 꽃잎마저 시들어 버리고는 천지에 모란은 자취도 없어지고 뻗쳐 오르던 내 보람 서.. ♣ 산마을 詩情 산책/한국대표시인이 추천한 애송시100편 2017.03.04
오산 인터체인지 /조병화 오산 인터체인지 조병화 자, 그럼 하는 손을 짙은 안개가 잡는다. 넌 남으로 천 리 난 동으로 사십 리 산을 넘는 저수지 마을 삭지 않은 시간, 삭은 산천을 돈다. 등은, 덴마크의 여인처럼 푸른 눈 긴 다리 안개속에 초조히 떨어져 서 있고 허허 벌판 작별을 하면 말도 무용해진다 어느새 이.. ♣ 산마을 詩情 산책/한국대표시인이 추천한 애송시100편 2017.03.04
비망록 /김경미 비망록 김경미 햇빛에 지친 해바라기가 가는 목을 담장에 기대고 잠시 쉴 즈음. 깨어보니 스물 네 살이었다. 神은, 꼭꼭 머리카락까지 조아리며 숨어 있어도 끝내 찾아주려 노력하지 않는 거만한 술레여서 늘 재미가 덜했고 타인은 고스란히 이유없는 눈물같은 것이었으므로, ​ 스물 .. ♣ 산마을 詩情 산책/한국대표시인이 추천한 애송시100편 2017.03.04
가지가 담을 덤을 때 /정끝별 가지가 담을 덤을 때 정끝별 이를테면 수양의 늘어진 가지가 담을 넘을 때 그건 수양 가지만의 일은 아니었을 것이다 얼굴 한 번 못 마주친 애먼 뿌리와 잠시 살 붙였다 적막히 손을 터는 꽃과 잎이 혼연일체 믿어주지 않았다면 가지 혼자서는 한없이 떨기만 했을 것이다 한 닷새 내리고 .. ♣ 산마을 詩情 산책/한국대표시인이 추천한 애송시100편 2017.02.13
참깨를 털면서 /김준태 참깨를 털면서 김준태 산그늘 내린 밭귀퉁이에서 할머니와 참깨를 턴다 보아하니 할머니는 슬슬 막대기질을 하지만 어두워지기 전에 집으로 돌아가고 싶은 젊은 나는 한 번을 내리치는 데도 힘을 더한다 세상사에는 흔히 맛보기가 어려운 쾌감이 참깨를 털어대는 일엔 희한하게 있는 것.. ♣ 산마을 詩情 산책/한국대표시인이 추천한 애송시100편 2017.02.12
추일서정 / 김광균 추일서정 - 김광균 낙엽은 폴란드 망명 정부의 지폐 포화에 이즈러진 도룬시의 가을 하늘을 생각케 한다 길은 한 줄기 구겨진 넥타이처럼 풀어져 일광의 폭포 속으로 사라지고 조그만 담배 연기를 내뿜으며 새로 두 시의 급행 열차가 들을 달린다 포푸라나무의 근골 사이로 공장의 지붕.. ♣ 산마을 詩情 산책/한국대표시인이 추천한 애송시100편 2017.02.11
落 花 /이형기 落 花 - 이형기 詩 - 가야 할 때가 언제인가를 분명히 알고 가는 이의 뒷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봄 한철 격정을 인내한 나의 사랑은 지고 있다. 분분한 낙화…… 결별이 이룩하는 축복에 싸여 지금은 가야 할 때, 무성한 녹음과 그리고 머지않아 열매 맺는 가을을 향하여 나의 청춘은 .. ♣ 산마을 詩情 산책/한국대표시인이 추천한 애송시100편 2017.02.11
서시 /이시영 서 시 -이시영 어서 오라 그리운 얼굴 산 넘고 물 건너 발 디디러 간 사람아 댓잎만 살랑여도 너 기다리는 얼굴들 봉창 열고 슬픈 눈동자를 태우는데 이 밤이 새기 전에 땅을 울리며 오라 어서 어머님의 긴 이야기를 듣자 ♣ 산마을 詩情 산책/한국대표시인이 추천한 애송시100편 2017.02.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