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산마을 詩情 산책/한국대표시인이 추천한 애송시100편

소 /김기택

산마을 풍경 2017. 1. 27. 16:41

 

 

김기택

소의 커다란 눈은 무언가 말하고 있는 듯 한데

나에겐 알아들을 수 있는 귀가 없다

소가 가진 말은 다 눈에 들어 있는 것 같다


말은 눈물처럼 떨어질 듯 그렁그렁 달려 있는데

몸 밖으로 나오는 길은 어디에도 없다

마음이 한 움큼씩 뽑혀나오도록 울어보지만

말은 눈 속에서 꿈쩍도 하지 않는다


수천만 년 말을 가두어 두고

그저 끔벅거리고만 있는

오, 저렇게도 순하고 동그란 감옥이여.


어찌해볼 도리가 없어서

소는 여러 번 씹었던 풀줄기를 배에서 꺼내어

다시 씹어 짓이기고 삼켰다간 또 꺼내어 짓이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