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산마을 詩情 산책/시인이 쓰는 산문 35

감꽃 피는 마을

감꽃 피는 마을 감꽃 피는 마을 5월이면 집 주변엔 온통 하얗게 감꽃이 내려앉았다. 숫된 동네 아이들과 감꽃을 실에 꿰어 목에 걸기도 하고 감꽃을 한주먹씩 입에 털어 넣기도 했었다. 유년 시절 감꽃은 좋은 장난감이었고 먹거리가 귀하던 시절 아주 훌륭한 간식거리였다. 싱그럽고 가만한 봄 밤에 주렁주렁 꽃을 매달고 있는 감나무가 은은하게 달빛에 젖은 풍경은 너무도 질박하고 그윽했다. 어린 시절 우리 마을에는 유난히 감나무가 많았다. 우리 집도 예외는 아니어서 집 둘레에 30여 그루가 있었다. 지금처럼 감나무를 전지하고 잘 가꾸던 시절이 아니어서 그냥 방치하다시피 하며 키웠다. 감나무는 키가 큰 것은 대략 20m나 되고 덩치 또한 엄청나게 커서 감 수확량도 많았다. 가을이면 집안은 감으로 충만했다. 생감, 홍..

두 친구

두 친구 간들바람이 들판을 적시면서 곡식들이 토실하게 영글었다. 코스모스가 한들거리고 검푸르던 나뭇잎도 물감을 흩뿌린 듯 붉게 물들었다. 높다란 하늘은 말갛고 엷게 푸르다. 연이틀 가을비가 뿌리더니 기온이 내려갈 무렵이었다. 서울에 사는 친구한테서 ‘커피 자루’를 구해 놓았으니 가지고 가라는 전화가 걸려왔다. 몇 달 전이었다. 농촌에서 두루 요긴하게 쓸 수 있을 것 같다고 하면서 ‘커피 자루’를 보내주겠다고 했었다. 친환경 소재인 야자수 껍질로 만든 것이라서 환경오염 문제도 전혀 없다고 했다. 나는 별 쓸모가 없을 것 같아서 친구의 권유를 사양하였다. 그러다가 나중에 생각해 보니 농장 입구에 주차장이 비만 오면 질어서 주차에 어려움이 있고 또 겨울에 어린나무를 보온하기 위해서 감싸주면 좋을 것 같았다. ..

행복한 걷기

행복한 걷기 매일 걷는다. 동네 산책로도 좋고 산도 좋고 강변길도 좋다. 산에 오른다. 산길을 걷는다. 눈 덮인 바위산, 나목들, 아름다운 겨울 산의 풍경들이 눈앞에 가득하다. 어디선가 들려오는 낮은 음의 독경 소리가 가슴을 차분하게 한다. 산에 가면 겨울나무에게 말을 건다. 겨울 산은 침묵으로 가득하지만 그냥의 침묵만은 아니다. 나에게 생각할 것은 생각하게하고 뒤돌아 볼 것은 뒤돌아보게 하는 소통의 침묵이다. 산길을 걷다보면 나무들의 잔가지들이 바람에 휘청 이며 소리를 낸다. 가끔 이름 모르는 산새소리들이 정겹기도 하다. 산길을 걸으면서 버린다. 내가 살아오면서 생긴 묵은 감정의 찌꺼기와 비루하고 낡은 생각들도 버린다. 버리면 맑아진다. 겨울 옹달샘물 처럼 맑아진다. 투명해진 가슴이 참 좋다. 버린 만..

가을 걷이를 하며

가을 걷이를 하며 요란하던 뻐꾸기 소리가 잦아들더니 기온도 많이 내려가고 조석으론 날씨가 제법 선선하다. 하지만 한낮에는 아직 햇살이 따사롭다. 덕분에 들판의 알곡과 열매들이 토실하게 잘 영글어 가고 있다. 춥지도 덥지도 않은 전형적인 가을 날씨라 활동하기에 딱 좋다. 농사일하기에도 좋고, 등산을 하기에도 좋고, 독서를 하기에도 안성맞춤의 시절이다. 산골 밭둑엔 어느새 노랗게 들국화가 번져간다. 동면에 들었던 대지가 깨어나기 시작하는 2월부터 농사일은 시작된다. 약용나무 농장을 하는 나는 2월 말이면 나무들 전지를 해 주어야 한다. 나무 수형을 잡아주고 미처 주지 못한 어린 나무에게 퇴비도 주어야 한다. 4월이 되면 나무에 물을 주고 묘목을 심기도 한다. 간혹 상한 나무나 죽은 나무 가지는 베어 낸다. ..

아름다운 2막

아름다운 2막 2019년 마지막 즈음에 나는 ‘면접시험’을 보러 나섰다. 중등교사 임용고시를 보고 난 후 근 30년 만에 면접을 보게 된 것이다. 건강상의 이유로 천직으로 여기던 교직을 일찍 명예퇴직하고 수년 간 병마에 시달리며 아무 일도 하지 못하고 모든 사회 활동도 접어야 했다. 이루 말로 다 표현할 수 없을 만큼 고통스럽고 힘든 시간을 보냈다. 직장을 은퇴하고 나면 참으로 하고 싶은 일이 많았다. 학창 시절 조금 배우다 만 기타도 배우고 싶고, 봉사 활동도 하고 싶고, 등산도 하고 싶고, 세계 여행도 마음껏 누리고 싶었다. 요즘 들어 몸이 좀 좋아지니 부쩍 일하고 싶은 생각이 든다. 다니던 직장을 어쩔 수 없이 그만둔 때문인가 다른 어떤 활동보다도 다시 직장에 서 동료들과 어울려 땀 흘리며 열심히 ..

신발과 건강

신발과 건강 나는 요즘 들어 신발에 대한 관심과 욕심이 부쩍 많아졌다. 신발은 우리의 일상생활에서 없어서는 안 될 생활필수품이다. 내가 신발 에 대해서 많은 관심을 갖게 된 것은 허리와 다리가 아프면서 부터다. 신발은 사람을 지탱하고 이동하는데 가장 기본적인 것이다. 허리가 아프다거나 다리가 아픈 사람은 특히 편안하고 걷기에 좋은 신발을 신어야 한다고 의사들은 충고한다. 편안하고 가볍고 쿠션 있는 신발이 허리나 다리에 훨씬 충격을 덜 주기 때문이다, 또한 신발은 우리 몸 전체의 건강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다. 얼마 전에 인터넷에서 신발을 구입했다. 무척 오랜만에 흰색 신발을 구입했다. 아주 깔끔하고 발도 편하고 좋았다. 단지 흰색 운동화는 금세 지저분해 져서 세탁하는 것이 번거롭다는 것이 마음에..

봄의 강가에서

봄 강가에서 올 겨울은 유난히 포근했다. 눈도 적고 바람이 심하지도 않았다. 늦가을 같은 날씨가 지속 되다 보니 봄도 일찍 찾아 온 모양이다. 봄맞이를 하러 집에서 가까운 팔송강으로 나갔다. 강변길 걷기를 자주 가는 곳이다. 강변길 걷기가 너무 좋다. 넓게 트인 시야와 강물 소리와 새소리, 갈대 흔들이는 소리를 모두 만날 수 있는 곳이다. 살터와 제대로 교감할 수 있는 곳이다. 요즘은 강둑에 길게 늘어선 벚나무가 꽃이 만개해서 무척 화사하다. 벚나무 아래는 갓 피어난 애기똥풀, 조팝꽃, 냉이꽃 같은 야생화들이 숙설거리고 있다. 담숙한 봄바람이 콧등을 친다. 가슴이 활랑거린다. 강이 오랜 겨울잠에 깨어나고 있다. 봄 강은 사계절 중 가장 생동감으로 충만하다. 벚꽃 너른해 환한 길을 사부자기 걷다보면 저절로..

반가운 문자 한 통

반가운 문자 한통 얼마 전의 일이다. 저녁을 먹고 쉬고 있는데 카톡으로 문자 한통이 날아왔다 “김홍래 선생님이시죠?” 전혀 자신의 소개도 없이 불쑥 아는 체를 하니 궁금하기도 하고 해서 “누구시죠“ 답장을 보냈다.”선생님은 저를 잘 기억하지 못하시겠지만 ㅇㅇ중학교에 다녔던 김ㅇㅇ입니다. “ 라며 답장이 왔다. 나는 10여 년 전 청주의 모 중학교에서 근무한 적이 있었다. 기억을 더듬어 보았다. 김00는 내가 담임을 했던 반 학생이었다. 내가 누구인지 정확하게 아는 학생이었다. 무척 반가웠다. 많은 시간이 지났는데 잊지 않고 연락을 주다니 여간 반가운 것이 아니다. 교사는 특히 퇴직 후에 제자들로 부터 연락을 받을 때가 가장 기쁘고 흐뭇하다. 그 학생의 담임을 맡은 다음 해 제천으로 발령이 나서 다시 만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