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산마을 詩情 산책/시인이 쓰는 산문

가을 걷이를 하며

산마을 풍경 2020. 8. 5. 13:38

가을 걷이를 하며

 

 

 

 

 

요란하던 뻐꾸기 소리가 잦아들더니 기온도 많이 내려가고 조석으론 날씨가 제법 선선하다. 하지만 한낮에는 아직 햇살이 따사롭다. 덕분에 들판의 알곡과 열매들이 토실하게 잘 영글어 가고 있다. 춥지도 덥지도 않은 전형적인 가을 날씨라 활동하기에 딱 좋다. 농사일하기에도 좋고, 등산을 하기에도 좋고, 독서를 하기에도 안성맞춤의 시절이다. 산골 밭둑엔 어느새 노랗게 들국화가 번져간다.

 

동면에 들었던 대지가 깨어나기 시작하는 2월부터 농사일은 시작된다. 약용나무 농장을 하는 나는 2월 말이면 나무들 전지를 해 주어야 한다. 나무 수형을 잡아주고 미처 주지 못한 어린 나무에게 퇴비도 주어야 한다. 4월이 되면 나무에 물을 주고 묘목을 심기도 한다. 간혹 상한 나무나 죽은 나무 가지는 베어 낸다. 봄이 되면 농장 주변으로 야생화가 피고 시작하는데 그 모습은 참으로 아름답기 그지없고 경이롭기 까지 하다. 풀꽃들이 피기 시작하면 농촌의 일손도 바빠지기 마련이다. 주변 산의 나무들도 물을 빨아올리면서 파릇파릇 연초록 잎이 돋아나고 인근에서 들려오는 새소리도 더욱 명랑해진 다. 내가 운영하는 약용나무 농장은 산으로 둘러싸여 있다. 가끔은 농장에서 너구리나 노루를 보기도 하고 어떨 때는 멧돼지들을 보고 놀란 적도 있다. 5월은 생명의 계절인 모양이다. 새들이 둥지를 트는 것을 쉽게 볼 수 있다. 더러 산토끼들을 만나기도 하는데 한 번은 아주 어린 새끼를 보았다. 잘 도망치지도 못하고 비척 이는데 그 모습이 어지나 귀엽고 앙증맞던지…

5월이면 약초 농장에도 나무 꽃들이 피어나기 시작한다. 가장 먼저 개화하는 것은 산사나무다. 꽃이 다발로 피는데 수국을 닮았다. 하얗게 뭉텅이로 피는 꽃이 여간 탐스럽지 않다. 이 꽃은 차츰 보라색으로 변하는데 무척이나 오래 간다. 마가목도 이 무렵에 꽃을 피운다. 흰 꽃이 피는데 무척이나 탐스럽고 복스러워 팔을 뻗어 한 아름 안아주고 싶은 꽃이다.

 

약초 농장 안에는 우리 가족들이 먹을 여러 가지 과일나무도 심었다. 사과나무, 배나무, 복숭아나무, 감나무, 매실나무, 살구나무 등이다. 일체의 농약이나 제초제를 치지 않고 퇴비도 아주 제한적으로 주면서 친환경 적으로 관리한다. 복숭아는 매우 잘 열리는데 익으면 멧돼지가 어떻게 알았는지 밤마다 와서 다 먹어 치운다. 복숭아나무 가지마저 분질러 놓아서 이듬해 농사도 망쳐 놓기가 일쑤다. 작년에는 너무 피해가 심하여 면사무소에 신고하고 도움을 청하였다.

 

올 가을엔 마가목 열매가 유난히 많이 열렸다. 마가목나무는 보통 해거리를 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작년에는 열매가 신통치 않았었다. 50여 그루 중에서 대여섯 나무만 조금씩 열려서 50Kg 정도를 시중에 내다 팔았다. 올해는 어린 나무부터 성목까지 그야 말로 가지가 째지게 열렸다. 나무들이 휘어지는 것은 물론이고 정말 나뭇가지가 땅에 닿아있다. 이런 모습을 보고 있자면 너무 뿌듯하고 행복하다. 올해는 몸이 아프다는 핑계로 나무들을 제대로 돌보지도 못했다. 9월초가 되어서야 예초기로 겨우 잡초를 제거해 주었다. 나무들에게 미안하다고 말하고 싶다. 제대로 가꾸지도 못했는데 풍성한 열매를 안겨 주었다. 나무가 나에게 내어 주는 것이 과분하다. 앞으로는 더 열심히 나무들을 돌보아야겠다고 다짐해 본다. 마가목은 아주 붉은 열매가 송이로 열리는데 매우 탐스럽고 그 모습도 장관이다. 그래서 요즘은 정원수로도 인기가 높다. 붉게 물든 튼실한 열매들을 보니 가을이 실감난다.

마가목은 꽃과 열매, 잎, 나뭇가지를 모두 약용하는데 초봄에 어린순을 살짝 데쳐서 나물로 먹기도 한다. 특히 호흡기에 매우 좋은 약재이며 관절염, 위장병에도 효험이 있다. 마가목은 열매와 나뭇가지로 술을 담그는데 그 맛과 향이 정말 뛰어나다. 내 입맛에는 값비싼 양주보다도 훨씬 풍미가 훌륭하다. 오래 두고 먹어도 상하지 않으므로 약 삼아 저녁으로 한 잔씩 마시면 건강에도 큰 도움을 준다.

가시오가피는 6월 말이 다 되어서야 꽃을 피우기 시작한다. 꽃은 송이로 피지만 작은 알갱이처럼 피어난다. 꽃이 필 때면 단내가 많이 나기에 벌과 곤충들이 무척 달려든다. 10월 말이면 열매가 검게 익기 시작하는데 수분이 많고 단맛이 많이 난다. 오가피의 종류는 여러 가지인데 우리 농장의 오가피는 가시가 많지 않은 편이다. 가시가 많으면 취급하기가 곤란하고 손이나 얼굴에 상처를 입기 쉬워 각별히 조심해서 다루어야 한다. 올해는 풍작은 아니지만 예년만큼은 열렸다. 열매 약재는 수확하는 즉시 팔아야 한다. 생물이라서 상하거나 말라서 신선도가 떨어 질 수 있기 때문이다. 요즘은 농부들도 인터넷을 이용하여 농산물을 파는 시대가 되었다. 나도 수확한 마가목 열매와 오가피 열매 등을 인터넷 악초시장을 통하여 판매한다. 주문이 들어오면 당일 채취하여 밭에서 손질하고 정리해서 그 자리에서 바로 포장하여 택배로 소비자에게 발송한다. 격세지감이다. 과거에는 농산물은 꼭 장날에 시장에 내다 팔아야 했었다.

올해부터 토종 보리수가 본격적으로 열리기 시작한다. 토종 보리수는 기관지나 해수, 천식에 명약으로 알려져 있다. 조선시대 허준이 저술한 「동의보감」에는 “보리수 서 말만 먹으면 10년 묵은 기침도 낫는다.” 라고 기록 되어 있다. 신품종 보다 알갱이는 작지만 아주 많이 가지가 휘어지게 열린다. 올해 처음으로 20Kg을 주문받아 팔았다. 내가 어릴 적에는 보리수를 ‘보리둑’이라고 불렀다. 약간 떫은맛이 나지만 끝 맛은 달큰하다. 과육이 단단한 편이며 씹는 느낌도 좋다. 늦은 가을 어머니와 함께 추수를 하고 돌아오는 길에 산기슭에서 따 먹던 그 맛은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어머니는 돌아 가신지가 어언 20년이 훌쩍 넘었다. 간식거리가 없던 시절 ‘보리둑‘은 너무도 훌륭한 간식거리였다. 출출하던 참에 가지째 꺾어서 집으로 오면서 따먹으면 너무 맛있었던 기억이 봄나물처럼 생생하다. 그 시절이 그립다. 농장에 가는 날이면 옛 추억을 생각하면서 따 먹으니 너무 행복하다. 어린 시절 생각이 많이 난다. 올해는 헛개나무 열매가 최고로 많이 열렸다. 아내가 서울을 가느라고 수확을 하지 못했다. 서산에 사는 친구가 와서 한 상자를 따가고 낙엽이 다 진 뒤에 땄더니 부서지는 것이 많아 상품성이 다소 떨어진다. 나중에 온 아내가 열성적으로 털고 주었다. 6키로 남짓 수확을 하였다. 인터넷 약초 시장에 내 놨는데 잘 팔리지 않는다. 아내는 너무 비싸게 내논다고 성화를 댄다. 나는 배짱으로 판다고 응수를 했다. 조금만 팔고 남으면 지인들에게 나눔 할 요량이다. 이제 곧 겨울이다. 지인들에게 나누어 주면 겨우내 차로 끓여서 맛있게 먹을 것이다. 하찮은 것이지만 내가 애써 농사지은 것을 소중한 분들에게 나누어 줄 수 있다는 것이 기쁘고 마음 푸근하다. 나에게는 이게 큰 보람이다. 처음부터 돈을 벌겠다고 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가을에는 여러 가지 약용나무의 약재들을 거두어들이고 나뭇가지도 솎아서 시장에 내다 판다. 가을걷이를 하는 시간은 그 어떤 시간보다도 보람 있고 흐뭇하다. 일 년 내 땀 흘리며 가꾸고 기다려온 결실을 보는 것이기 때문이리라. 나무들은 정말 정직하고 착하다. 내게 단 한 번도 화를 내거나 불평하지 않고 무럭무럭 잘 자라준다. 나무가 참으로 대견하고 고맙다. 올 가을의 풍성한 열매처럼 모든 사람들이 행복하고 마음 넉넉한 가을이기를 소망해 본다.

2019. 11.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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