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산마을 詩情 산책/시인이 쓰는 산문

행복한 걷기

산마을 풍경 2020. 8. 21. 14:43

행복한 걷기

 

 

 

 

 

 

매일 걷는다. 동네 산책로도 좋고 산도 좋고 강변길도 좋다. 산에 오른다. 산길을 걷는다. 눈 덮인 바위산, 나목들, 아름다운 겨울 산의 풍경들이 눈앞에 가득하다. 어디선가 들려오는 낮은 음의 독경 소리가 가슴을 차분하게 한다. 산에 가면 겨울나무에게 말을 건다. 겨울 산은 침묵으로 가득하지만 그냥의 침묵만은 아니다. 나에게 생각할 것은 생각하게하고 뒤돌아 볼 것은 뒤돌아보게 하는 소통의 침묵이다. 산길을 걷다보면 나무들의 잔가지들이 바람에 휘청 이며 소리를 낸다. 가끔 이름 모르는 산새소리들이 정겹기도 하다. 산길을 걸으면서 버린다. 내가 살아오면서 생긴 묵은 감정의 찌꺼기와 비루하고 낡은 생각들도 버린다. 버리면 맑아진다. 겨울 옹달샘물 처럼 맑아진다. 투명해진 가슴이 참 좋다. 버린 만큼 얻는다. 산길에서 만나는 것들 바위, 나무, 풀, 산짐승들 모두가 우리 곁의 자연이다. 걸으면서 자연의 소중함과 아름다움의 가치를 생각하고 자연의 보전에도 관심을 가지게 된다.

다행히도 집 주변으로 산책로가 잘 만들어져 있다. 신호등을 건너지 않고도 쉽게 접근할 수 있다. 틈나면 산책로 걷기를 한다. 봄이면 진달래. 철쭉, 이팝나무가 예쁘게 꽃을 피운다. 화사한 봄날의 걷기는 내 몸과 마음에 활력을 주기에 충분하다. 여름에는 숲속 같은 분위기가 된다. 시원한 그늘 속에서 걷기를 하니 덮지 않아서 너무 좋다. 아침저녁 걷기가 나의 일과 중하나다. 한 시간 정도 걸으면 온몸에 땀이 난다. 걷기를 하는 동안에는 잡다한 생각들이 다 사라진다. 땀 흘리며 걷는 것만 생각한다. 걷고 나서 샤워를 하고 막걸리를 한잔 마시면 상쾌하고 몸이 가볍다. 9월의 산책로는 나뭇잎들이 조금씩 색깔이 변하기 시작한다. 쑥부쟁이나 구절초꽃, 개미취꽃이 이쁘다. 산책로 변에는 국화가 무더기로 심어져 있다. 구청에서 심은 것이다. 국화도 색깔이 참 다양하다. 가을 저녁 어스름에 산책로를 걷자면 풀벌레 소리가 귀를 간질인다. 나뭇잎 흔들리는 소리도 한적함을 더한다. 가을이 깊어지면 산책로 변의 나무들이 물이 들어 단풍이 아름다운데, 특히 화살나무 단풍이 곱다. 한 가지 색이 아니라 연둣빛, 초록, 주황, 붉은색 다채로운 색깔로 아름다음을 뽐낸다. 낙엽이 지는 늦은 가을에는 쓸쓸하다. 하지만 그냥 쓸쓸함만이 아니라 사유의 폭을 확장해 주는 고마운 쓸쓸함이다. 겨울에는 눈이 내리면 눈을 쓴 나무들이 더ㅇ없이 아름답고 풍요로움까지 느끼게 한다. 설악산이나 한라산 같은 큰 산을 가지 않더라도 눈 내린 풍경을 마음껏 지켜 볼 수 있다. 눈 온 날 아침 일찍 나가면 산책로엔 발자국이 전혀 없다. 깨끗한 눈 위에 첫 발자국을 남기며 걷는 기분은 실로 정겹고 마음이 정갈해진다.

 

가끔은 시골의 작은 강의 강변길도 걷는다. 봄 강변은 들꽃들이 향연을 펼친다. 강변 따라 난 길은 작고 구불구불하고 굴곡이 심하다. 걸을 때마다 계절의 변화를 실감할 수 있어서 참 좋다. 강물 소리와 함께 걷는 것은 집 앞 산책로를 걷는 것과는 또 다른 감정이다. 흐르는 물을 보며 물소리를 들으며 걷는다. 강변 길 옆으로 펼쳐지는 산이나 들판의 모습은 자연그대로여서 더욱 정겹다. 여름엔 가끔씩 산그늘이 내려와서 걷는 이의 더위를 식혀준다. 강가에는 철새보다는 텃새들이 많이 산다. 강변에서 한가로이 노니는 새들의 모습을 보면 나도 저절로 마음이 한가해 진다.

강변에는 철철이 꽃들이 피어난다. 대부분은 이름을 알 수 없는 꽃들이다. 화려하지도 않고 그냥 수수하고 소박한 꽃들이다. 강변길 걷기는 운동보다는 주변 경관을 둘러보거나 사색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늦여름 강변길을 걷다 저물 무렵 강변에 홀로 앉아 있으면 좋다. 물 흐름이 느린 곳에서는 물고기가 뛰어 오르고 물고기들이 석양을 받아 은빛으로 빛난다. 이 고요함과 한가로운 풍경 속에 있으면 마음이 편안해지고 그윽해진다. 불편하고 이기적인 마음은 강물에 버린다. 지난 어린 날들의 추억들이 새록새록 떠오르곤 한다. 족대를 이용하여 물고기를 잡던 일, 강가에서 여자 아이들과 함께 어울려서 올갱이를 잡던 일들은 생각만 해도 정겹고 미소가 떠오른다. 눈 내린 겨울 강변길을 걷다보면 머리가 저절로 맑아진다. 언 강 속으로 흐는 물소리가 정겹게 들리고 가끔씩 텃새들이 바람에 흔들리는 모습이 안쓰럽기도 하다.

나는 지난 몇 년간 허리 통증으로 걸을 수가 없었다. 내가 좋아하는 걷기를 할 수 없으니 정말 답답한 노릇이었다. 걸으면서 할 수 있었던 것들을 하나도 할 수 없었다. 다행히 몇 년을 고생한 끝에 이제는 걸을 수 있어서 행복하다. 나의 행복한 걷기는 계속될 것이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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