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산마을 詩情 산책/미발표 신작 詩 161

내 그리운 사람에게7

내 그리운 사람에게7 쑥부쟁이 연가(戀歌) 초가을 늦은 오후 호숫가를 걷다가 갓 피어난 연보랏빛 쑥부쟁이 보니 당신 인양 반갑습니다. 불현듯 머릿속이 당신 생각으로 꽉 차올랐습니다. 화사한 나무꽃 보다 풀꽃을 좋아하는 당신이지요. 이미 호수 절반쯤 내려온 산그늘 아래 물 위에는 간간이 어린 물고기들이 은비늘을 흔들며 저물녘을 반기고 서늘해진 들바람이 불어와서 끝없이 잔물결들을 주름잡고 있습니다. 당신 좋아하는 말쑥한 쑥부쟁이 바라보다가 이 꽃잎 엮어 당신께 띄워 보냅니다. 부디......(2004/8/22)

캄캄한

캄캄한 밤 당신, 당신이 곁에 있을 때는 미쳐 알지 못했습니다. 이만큼 소중한지 몰랐습니다. 내 살과 뼈 마디마디 까지 들어와 박혀 있는지 몰랐습니다. 당신가고 없으니 나는 매번 헛손질이어서 아무 것도 할 수가 없고 매일 매일이 어디를 가나 캄캄한 밤입니다. 피붙이 하나 없는 이국 땅의 산 허리에 홀로 서있는 나그네입니다. 내 허벅지의 살점보다도 소중한 당신.

물굽이 계곡에 가면

물굽이 계곡에 가면 아직 처녀인 물구비 계곡에 가면 알을 깨며 나오는 앳된 멧새들의 숨소리. 청옥빛으로 구르는 청아한 물소리는 탁주빛(濁酒) 귀를 적시고 촌티나는 피라미떼들은 연신 발가락을 간지럼 태운다. 창연한 푸른 숲은 시간의 물때가 낀 선녀탕의 품안에 들고 삐끔 구멍난 하늘엔 성긴 흰구름의 파편들이 분주히 가을 편으로 가고 있다

산에 가거든

산에 가거든 산에 가거든 신록 우북한 여름 산에 가거든 어머니의 젖가슴인 양 푹 취해 보아라. 매일 매일 욕망이라는 열차에 오르는 남실거리는 너의 호사스런 영혼이 얼마나 산망하고 거칫한 것이었는지 확인해 보아라. 산에 가거든, 다 벗은, 눈내린 겨울 산의 산정(山頂)에 서거든 꼿꼿하고 초연한 나목(裸木) 앞에 서서 네가 걸치고 온 속옷까지 훌훌 벗어 보아라. 네 심장이 얼마나 맑아지고, 몸뚱이가 가벼워지는 가를 시험해 보아라.

바위

바 위 더러는 바위처럼 살아볼 일이다. 스스로의 몸무게로 세상 떠 받치며 온 몸으로 살아 볼 일이다. 무심하게 살 일이다. 목련이 지고 벚꽃이 핀다거나 가을이 가고 눈발이 정처 없이 떠돌더라도 지긋한 눈으로 사람 좋은 웃음을 물고 우리 동네를 바라보며 그렇게 서있을 일이다. 세상이 넘치도록 내리던 지난해 여름비나 바람위로 날려 오는 가을의 기름진 냄새들이 심장으로 박혀올지라도 내 몸의 몸무게를 스스로 떠받치며 내일도 온 몸으로 살아낼 일이다.

가을 단상

가을 단상 -바람에게 김홍래 하늘은 한층 올라가고 더위는 한풀 꺾이니 가을인가 싶다. 소슬한 가을바람을 따라가 보자. 술렁이는 바람에 나를 무등 태워 보자. 호젓함이 더하여 약간은 고적한 분위기가 나는 간이역 주변 허름한 선술집에서 빛바랜 양은 주전자에 막걸리를 가득 채우고 19공탄 연탄 화덕엔 간고등어 두어 마리 구우면 좋겠다. 넉넉한 막걸리 사발 위엔 지난 청동의 시절들 둥실 뜨고 한가로운 달빛도 동무 삼아 두런두런 이야기 풀어내고 싶다. 여기는 중앙선을 타고 가다 소백산을 막 지나 내리는 풍기역 쯤이 되려나…… 아직은 은행나무가 물들지는 않았겠지만 부석사 가는 길에 노을빛 치장한 은행나무들이 설레게 보고 싶다. 바람아 이번 가을만큼은 그냥 두고 가렴아 혼자 가렴아

5월의 심산에서

5월의 심산(深山)에서 아! 푸르름의 향연(饗宴)이다. 희망의 화음(和音)이다. 골바람에 물결쳐 오는 연녹색의 푸르른 파도에 연신 눈꺼풀이 흐느낀다. 발아래로 흘러가는 슬프도록 명징(明澄)한 생명수들의 다감한 이야기들을 들어주다가, 다시금 하늘을 올려다보다가 여기 내 가난한 삶의 여수(旅愁)를 내려 놓는다. 한그루 어린 나무를 심는다.

‘즐거운 집’ 앞을

‘즐거운 집’ 앞을 지나며 어머니 초가을 아침 하늘은 참 맑습니다. 깨끗한 하늘과 막 떠오르는 해를 보며 티없이 말끔하고 욕심없는 하루하루를 살고 싶다는 생각을 하였습니다. 어머니 어제도 그제처럼 퇴근길에 ‘즐거운 집’앞을 그냥 지나쳐 왔습니다. 여태 나보다 더 힘들어하는 이웃들을 위해 조금이라도 마음 써 본 일이 없는 것 같아 잠시 우울하였습니다. 산에 오르며 깊은 산길을 걸으며 매번 나보다 어려운 이웃을 위해 마음쓰며 살아가리라 다짐하고 또 다짐하건만 막상 산을 내려와서 내 것 무엇하나 누구에게 내준다고 생각하면 갑자기 가슴이 쪼그라듭니다. 진정 나눔의 정을 배우는데 게을리한 까닭입니다. 어머니 오늘 아침은 들꽃 한 송이라도 함께 나눌 수 있는 그런 따스한 사랑을 배우지 못한 것을 내내 후회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