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산마을 詩情 산책/최근 발표 작품

그자리외 1편/한맥문학.2019.11월호

산마을 풍경 2019. 11. 7. 21:50

그 자리

 

 

 

 

스 스 스 사사삭 스스스......

비 그친 뒤에 이는 한 타래 바람에

굴참나무 꼭대기

나뭇잎 갈리는 소리

메아리 되어 돌아오는 불경 소리

 

멀리 발 아래로 굽어보이는

신작로를 바라보고 서있는

스님의 이마에 깊게 패인 주름만큼이나

세월이 무겁다

 

무언가를 다시 시작하려 해도

그 자리에 서있고

뒤를 돌아보아도 그냥 그 자리

 

이런 날에

암자의 뜨락에 서있을라치면

잊히지 않는 기억이 미울 때가 있다

 

이제 어둔 산을 내려서면

기억의 찌꺼기가 조금 남아 있어도

그냥 그 자리에 두 다리를 걸친다

 





가을 금강에 가면

 

 

 

 

 

 

가을 금강에 가면

강을 따라 난 작은 길섶으론

군데군데 연보랏빛 쑥부쟁이 군락들이

함초롬하고 청초하다.

 

강 언덕 위에는

탐욕의 보따리를 가득 실은

무거운 자동차들이

쉼 없이 도시로, 도시로 미끄러져 간다.

 

멀리서, 굽은 강변길을 걸어가는

여인의 가벼운 어깨가 실룩거린다.

가슴 속에 품고 온 버거운 짐들을

다 강물에 버린 모양이다.

나도 따라가며 강물에 던져 버린다.

내 몸도 이내 마른 풀잎처럼 가볍다.

무던히도 스스로 몸 낮추며

속 깊어 지는 강물에게 미안하다.

가을 금강에 가면

나도 순한 강물이 되어 흘러가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