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라도 가시내 /이용악 전라도 가시내 이용악 알룩조개에 입맞추며 자랐나 눈이 바다처럼 푸를뿐더러 까무스레한 네 얼골 가시내야 나는 발을 얼구며 무쇠다리를 건너온 함경도 사내 바람소리도 호개도 인전 무섭지 않다만 어드운 등불 밑 안개처럼 자욱한 시름을 달게 마시련다만 어디서 흉참한 기별이 뛰어.. ♣ 산마을 詩情 산책/한국대표시인이 추천한 애송시100편 2017.01.14
문의 마을에 가서 /고은 문의 마을에 가서 고은 겨울 문의에 가서 보았다. 거기까지 닿은 길이 몇 갈래의 길과 가까스로 만나는 것을. 죽음은 죽음만큼 길이 적막하기를 바란다. 마른 소리로 한 번씩 귀를 닫고 길들은 저마다 추운 쪽으로 뻗는구나. 그러나 삶은 길에서 돌아가 잠든 마을에 재를 날리고 문득 팔짱.. ♣ 산마을 詩情 산책/한국대표시인이 추천한 애송시100편 2017.01.14
그릇 1 /오세영 그릇 1 - 오세영 깨진 그릇은 칼날이 된다. 절제(節制)와 균형(均衡)의 중심에서 빗나간 힘, 부서진 원은 모를 세우고 이성(理性)의 차가운 눈을 뜨게 한다. 맹목(盲目)의 사랑을 노리는 사금파리여, 지금 나는 맨발이다. 베어지기를 기다리는 살이다. 상처 깊숙이서 성숙하는 혼(魂) 깨진 그.. ♣ 산마을 詩情 산책/한국대표시인이 추천한 애송시100편 2017.01.14
저녁의 염전 /김경주 저녁의 염전 김경주 죽은 사람을 물가로 질질 끌고 가듯이 염전의 어둠은 온다 섬의 그늘들이 바람에 실려온다 물 안에 스며 있는 물고기들, 흰 눈이 수면에 번지고 있다 폐선의 유리창으로 비치는 물속의 어둠 선실 바닥엔 어린 갈매기들이 웅크렸던 얼룩, 비늘들을 벗고 있는 물의 저녁.. ♣ 산마을 詩情 산책/한국대표시인이 추천한 애송시100편 2017.01.14
혼자 가는 먼 집 /허수경 혼자 가는 먼 집 허수경 당신...당신이라는 말 참 좋지요. 그래서 불러봅니다. 킥킥거리며 한때 적요로움의 울음이 있었던 때, 한 슬픔이 문을 닫으면 또 한슬픔이 문을 여는것을 이만큼 살아옴의 상처의 기대. 나 킥킥... 당신을 부릅니다. 단풍의 손바닥, 은행의 두갈래 그리고 합참 저 개.. ♣ 산마을 詩情 산책/한국대표시인이 추천한 애송시100편 2017.01.14
성탄제 /김종길 성탄제 김종길 어두운 방 안엔 바알간 숯불이 피고, 외로이 늙으신 할머니가 애처로이 잦아드는 어린 목숨을 지키고 계시었다. 이윽고 눈 속을 아버지가 약(藥)을 가지고 돌아오시었다. 아, 아버지가 눈을 헤치고 따 오신 그 붉은 산수유(山茱萸) 열매 ― 나는 한 마리 어린 짐승, 젊은 아버.. ♣ 산마을 詩情 산책/한국대표시인이 추천한 애송시100편 2017.01.14
광야 /이육사 광야 이육사 까마득한 날에 하늘이 처음 열리고 어데 닭 우는 소리 들렸으랴. 모든 산맥들이 바다를 연모해 휘달릴 때도 참아 이 곳을 범하던 못 하였으리라 끊임없는 광음을 부지런한 계절이 피어선 지고 큰 강물이 비로소 길을 열었다. 지금 눈 나리고 매화향기 홀로 아득하니 내 여기 .. ♣ 산마을 詩情 산책/한국대표시인이 추천한 애송시100편 2017.01.14
잘 익은 사과 /김혜순 잘 익은 사과 - 김혜순 백 마리 여치가 한꺼번에 우는 소리 내 자전거 바퀴가 치르르치르르 도는 소리 보랏빛 가을 찬바람이 정미소에 실려온 나락들처럼 바퀴살 아래에서 자꾸만 빻아지는 소리 처녀 엄마의 눈물만 받아먹고 살다가 유모차에 실려 먼 나라로 입양 가는 아가의 뺨보다 더 .. ♣ 산마을 詩情 산책/한국대표시인이 추천한 애송시100편 2017.01.14
남신의주 유동 박시봉방 /백석 남신의주 유동 박시봉방 백석 어느 사이에 나는 아내도 없고, 또, 아내와 같이 살던 집도 없어지고, 그리고 살뜰한 부모며 동생들과도 멀리 떨어져서, 그 어느 바람 세인 쓸쓸한 거리 끝에 헤매이었다. 바로 날도 저물어서, 바람은 더욱 세게 불고, 추위는 점점 더해 오는데, 나는 어느 목.. ♣ 산마을 詩情 산책/한국대표시인이 추천한 애송시100편 2017.01.14
귀천 /천상병 귀천 -천상병, 귀 천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새벽빛 와 닿으면 스러지는 이슬 더불어 손에 손을 잡고,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노을빛 함께 단둘이서 기슭에서 놀다가 구름 손짓하며는,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 가서, 아름다웠더라고 말하리라...... ♣ 산마을 詩情 산책/한국대표시인이 추천한 애송시100편 2017.01.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