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마
아침부터 부슬부슬 비가 내리더니
오전 수업을 마치고 돌아오는데
벌써 큰 도랑물이 가득 차 올랐어
책 보따리 어깨에 질러 메고
돌다리 더듬거리며 찾아 건너다
봄 소풍 때 사준 까막 고무신
잃어버리고 간신히 몸만 빠져 나왔지
맨발로 다리 절며
집에 오니 아버지 불호령이 떨어지고
어머니도 신발은 벗어들고 건너야지
신고 건너면 어쩌냐고 성화셨지
그 길로 큰 형님과 쇠스랑 들고
신발 찾으러 나섰으나
고무신 온데 간데 없고
시뻘건 황토 물만 더욱 불어났었지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억지로 옮겨
앞마당에 당도하니 어머니 얼굴 말이 아니데
나는 슬그머니 봉당에 쭈그리고
앉아있으려니 아버진 얼른 올라와
점심 먹으라는데 영 입맛이 돌질 않아
모래알 같은 밥알을 몇 술 떠 넣고
추녀 끝에 떨어지는 빗줄기만 바라보고 서 있는데
어머니는 용케도 마루 밑에서 너덜너덜한 신발
두 짝 찾아내어 꿰매 주시며 다음 장날까지
신어보라 신다
그제야 나는 고른 숨을 쉴 수 있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