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산마을 詩情 산책/한국대표시인이 추천한 애송시100편

인파이터-코끼리군의 엽서 /이장욱

산마을 풍경 2017. 1. 15. 22:00

인파이터-코끼리군의 엽서

 

 

 

 

                                        / 이장욱


저기 저, 안전해진 자들의 표정을 봐.

하지만 머나먼 구름들이 선전포고를 해온다면

나는 벙어리처럼 끝내 싸우지.

김득구의 14회전, 그의 마지막 스텝을 기억하는지.

사랑이 없으면 리얼리즘도 없어요

내 눈앞에 나 아닌 네가 없듯. 그런데,

사과를 놓친 가지 끝처럼 문득 텅 비어버리는

여긴 또 어디?

한 잔의 소주를 마시고 내리는 눈 속을 걸어

가장 어이없는 겨울에 당도하고 싶어.

다시는 돌아오지 못할 곳

방금 눈앞에서 사라진 고양이가 도착한 곳.

하지만 커다란 가운을 걸치고

나는 사각의 링으로 전진하는 거야.

날 위해 울지 말아요, 아르헨티나.

넌 내가 바라보던 바다를 상상한 적이 없잖아?

그러니까 어느 날 아침에는 날 잊어줘.

사람들을 떠올리면 에네르기만 떨어질 뿐.

떨어진 사과처럼 멍하니 창밖을 바라보는데

거기 서해 쪽으로 천천히, 새 한 마리 날아가데.

모호한 빛 속에서 느낌 없이 흔들릴 때

구름 따위는 모두 알고 있다는 듯한 표정들.

하지만 돌아보지 말자, 돌아보면 돌처럼 굳어

다시는 카운터펀치를 날릴 수 없지.

안녕. 날 위해 울지 말아요.

고양이가 있었다는 증거는 없잖아? 그러니까,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구름의 것은 구름에게.

나는 지치지 않는

구름의 스파링 파트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