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숲
성영희
겨울 산, 수런대는 계곡을 따라가다 보면 물고기들의 을씨년스러운 잔등을 만난다. 꼬리는 하류 쪽으로 꿈틀거린다. 깡마른 나무들이 직립으로 견디는 가잠의 시간들, 고드름이 가시처럼 흘러내리고 있다. 폭포는 떨어지는 소리들로 얼지 않는다. 튀어나간 물방울들만 빙벽으로 미끄럽다. 뼈를 드러낸 물고기의 잔등처럼 잎 다 떨어진 나무들이 일렬로 서 있는 산등성이
나무들의 귀는 일년생이다.
어떤 소리가 저렇게 앙상하게 남아 저희들끼리 입을 만드는가,
수백 년 동안 자란 물고기들이 산꼭대기를 헤엄치고 있다.
능선 지느러미 겨울을 달리고 있다.
물고기들의 조상은 앙상한 나무들이 줄 서 있는 저 산등성이다. 얼음장 밑에 귀를 대 보면 넓은 대양의 물이 가는 줄기로 흘러내린다. 봄부터 여름까지 가득 찼던 푸른 정맥을 닫아 버리고 앙상한 팔로 바람을 겪는 지느러미들
아무리 작은 물고기라도 몸속에 가시를 숨기로 있듯 겨울 산, 그 끝없는 능선 속에는 헤아릴 수 없는 잔가시들이 공중을 향해 자라고 있다.
활시위를 당기듯 겨울 숲을 당기는 팽팽한 바람에 능선 하나 걸린다. 꿈틀거리며 물살을 타는 지느러미들, 겨울이 느리게 날아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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