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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잡지, 아름다운 추억을 선물하다/창작산맥.2019.여름호

산마을 풍경 2019. 7. 14. 13:22

잡지, 아름다운 추억을 선물하다

 

 

 

 

 

 

김홍래

내가 잡지를 처음 접하게 된 것은 아마 중학교 때 이었던 것 같다.

중학교 3학년이 되면서 「학생중앙」이란 잡지를 알게 되었는데,

그 잡지는 당시 학생들에게 무척 인기가 많았다.

시골에 살았던 나로서는 생전 처음으로 잡지, 그것도 학생 잡지를

만나게 되었다. 이 잡지를 통하여 도회지 학생들의 생활과 공부하는 법

참고서 등의 정보를 알게 되었고 학생들 사이에 유행하는 모자나 신발, 옷 등의 외모 가꾸기나 이성 친구의 사귐 등을 접하면서 아주 신기해했었다.

돈이 없었던 우리들은 친한 친구들 몇 명이 모여 얼마씩 돈을 걷어서 잡지책을 구입하여 돌려 보았다.

특히 잡지 거의 끝부분에는 매호마다 “펜팔”을 희망하는 학생들을 소개하고 있었는데, 나는 친한 친구들과 함께 잡지에 소개된 이성 친구들에게

편지를 쓰는 것이 너무 너무 즐겁고 재미있었다. 집에 돌아오면 늦은 밤까지 부모님 몰래 편지를 쓰곤 하였다. 친구들은 답장을 받기위해 정성스레 또 정말 아름다운 문구를 동원하여 편지를 쓰려고 노력하며, 서로 읽어 봐주고 고쳐주기도 하였다. 그러나 사실 답장을 받는다는 것이 그리 쉬운 일은 아니었다. 잡지에 소개된 친구들은 수십 통 많게는 수백 통의 편지를 받게 된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어떤 친구는 우리도 잡지에 광고(?)를 내자고 제안하기도 하였지만 주변 여학교나 선생님들에게 소문나는 것이 창피하고 두려워 그럴 용기가 나지 않았다.

용케 어느 한 친구가 답장을 받게 되면 우리는 선생님을 피해서 학교 화장실 뒤편 같은 후미진 곳이나 옥상으로 올라가 두 번 세 번 읽으며 즐거워했다. 편지가 오랫동안 오간 친구도 있었다. 우리 모두는 그 친구를 응원하였다. 이제는 아련한 그리움으로 남았다. 아직도 그 때를 생각하면 가슴이 콩닥거리고 설렌다. 나는 중학교 시절 감미롭고 따뜻한 추억을 선물 받은 것이다.

고등학교 때에는 공부를 하느라고 잡지에 대하여 별로 신경을 쓸 겨를이 없었던 같다. 그 뒤로 잡지를 접한 것은 열차를 타고 시골에 간다거나 여행을 할 때 기차역이나 버스터미널 가판대에서 주간지를 사보았던 기억이 있다. 그리고 간혹 은행이나 병원엘 가면 기다리는 시간에 잡지를 보는 정도였다.

내가 잡지에 대하여 많은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취직을 하고 30대 중반쯤 이었다. 생활이 좀 안정 되고 나서 시사 문제에 관심을 갖게 되면서 부터다. 신문을 통해서도 여러 가지 시사 정보를 얻을 수 있지만,

잡지를 보게 되면 더욱 풍부한 정보를 선택적으로 취득할 수 있는 것 같아서 좋다. 내가 보는 잡지는「한겨레21」,「 시사인」같은 시사 주간지와 문학지 등인데 이런 잡지들은 오래 전부터 구독을 하고 있다. 시사 잡지는 시사 문제에 있어 신문에 다루지 않는 내용을 접할 수 있고 무엇보다도 전문성과 깊이가 있어서 좋은 것 같다. 시사 주간지를 통해서 한 주간의 시사 문제나 이슈, 화제 등의 밀도 있는 기사나 시사 만화, 전문가의 기고를 재미있게 읽을 수 있어서 너무 좋다.

또 나는 어릴 적부터 문학에 관심이 많고 좋아하였다. 그래서 월간, 계간 문학지를 구독하고 있는데, 시집이나 소설책을 사면 한 사람의 작품만을 감상할 수 있지만 문학지를 보게 되면 시나 소설, 산문, 희곡, 동화 같은 여러 가지 문학 장르를 접할 수 있고, 매호마다 다른 작가들의 작품을 읽을 수 있는 신선함도 마음에 든다.

요즘은 잡지 오는 날이 기다려진다. 잡지가 오는 날은 습관처럼 아침부터 우편함을 기웃거리게 된다. 잡지가 오면 시사 주간지는 내가 먼저 읽고 다음은 대학생 딸이 읽는다. 아내는 제일 나중에 보면서 나에게 여러 가지 질문을 하고 나는 답을 하면서 한 주 간의 시사 문제와 더불어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게 된다. 가끔 작은 딸도 대화에 끼어든다. 잡지는 이렇게 자연스럽게 가족 간의 소통의 길을 열어 주어서 참으로 고맙다.

문학지는 문학을 전공한 아내가 관심이 더 많다. 나는 시를 좋아하여 주로 시를 즐겨 읽고 아내는 산문이나 소설을 챙겨 읽는 편인데 읽고 난 후에는 어떤 작품은 꼭 읽으라고 서로 권하기도 한다. 가끔 주말에는 거실에서 전등 대신 촛불을 밝히고 딸, 아내와 함께 시 낭송을 한다. 돌아가면서 문학지에 실린 시들 중에서 한 편식 골라서 낭송을 하면서 함께 문학을 공감하며 즐기기도 한다. 이렇게 시낭송을 할 때는 정말 가족이 서로 따뜻해지는 느낌이다. 지난달에 낭송한 시 한 편을 소개 한다.

10월

햇가을 들녘에

바람이 어슬렁거리면

먼 산을 보게 됩니다.

들꽃 향기 자욱이

치마폭에 고이던

5월에 떠나간 그대

저런 삽상한 10월의 바람 되어

다시 돌아오실까

저만치 멀리까지 내다봅니다.

오늘도 당신

떠나시던 날처럼

먼 산만 바라 봅니다. (졸작 10월 전문)

우리 집에는 책장 가득 주간지와 문학지가 진열되어 있다.

가끔 지나간 잡지를 펴보는 것도 또 다른 재밋거리다. 잡지 속에는 작은 글씨의 메모도 함께 있어서 지난 시간을 반추하기에도 안성맞춤이다.

아름다운 추억이 있어 내 삶이 더 향기롭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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