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둑 길
오늘
헛헛한 마음을 비켜서려고
수로 따라 난 오롯한
들길을 걸었습니다
모사리를 끝낸 벼는 들판을 제법
연둣빛으로 물들이고
수로 변에 물 갈대는 벌써 한키나 자랐어요
한 뼘은 남아 있는 저녁 해가
수로로 붉게 넘어지니 아파트도, 물 갈대도
차례로 넘어집니다
어린 시절
모 춤을 양손에 들고 논둑 길을
잘도 내달리던 기억이 새록새록 납니다
어스름 저녁이 되자 개구리 소리가
체면도 없이 들길에 마구 나뒹굴고
아파트의 불빛이 하나 둘 늘어
휘적휘적 어둔 들길을 걸어 나올라치면
어느새 내 발끝엔
아련한 추억의 그림자가 길게 드리워집니다
아, 이 들길 따라 어머니가 서 계시던
그 논둑 길까지 내달리고 싶습니다
-교단문학, 1999, 가을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