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속
시집을 펼쳤다
문득 혼자 있는 시간이
겨울밤처럼 길다는 생각에
폈던 시집을 접고
천천히 내려앉는 어둠에
기대서서 유리창에 비친
증류수처럼 맑은 눈동자를 훔친다.
아파트 옥상에 걸렸던 달그림자가
땅속으로 잦아들고
허옇게 신 새벽이 오는 소리에
얼른 귀를 세웠다.
커튼을 밀쳤다.
물 먹은 벽시계의 시침은 늘어져 있고
밤새 침묵 속에서 뒤척이던
바다 빛 전화기가 더욱 선명해졌다.
한참 동안의 침묵이 흘렀다
어제 밤에
마시다 남은 식탁 위의
녹차잔엔 아직도 푸른 잔향이
퍼덕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