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말 다행인 것은 소서를 지나 초복부터 삼복(三伏)을 지나는 동안 많은 사람들이 이열치열(以熱治熱) 요법을 참으로 잘 지킨다는 것이다. 이때 사랑받는 음식으로 삼계탕과 함께 보신탕이 손꼽힌다.
이른 여름부터 보신탕을 즐겨 먹는 지인은 주머니에 늘 행인(杏仁)이라고 부르는 살구속씨를 넣고 다닌다. 궁금해 연유를 물었더니 보신탕을 먹고 난 후 행인을 꼭꼭 씹어 따뜻한 물과 함께 먹는다고 했다. 나는 그분의 지혜로움에 감탄을 금치 못했다. 실제로 보신탕을 먹고 속이 불편할 때 행인을 먹으면 금방 편안해진다. 지나친 과음으로 괴로울 때도 살구를 먹으면 속이 풀어지며 숙취해소에 도움이 된다.
살구는 소서 무렵부터 서서히 황금색으로 익기 시작한다. 한입 깨물면 약간의 시큼함과 달큼함이 입안 가득 차오르는 그 느낌을 어찌 말로 다 표현할 수 있을까. 아마도 살구 과육에 풍부한 비타민A와 구연산·사과산이 무더운 여름을 건강하게 보낼 수 있도록 도와주기 때문일 것이다.
일본인들이 좋아하는 우메보시(매실절임)도 원조는 중국 본토에서 넘어온 토종살구다. 잘 익은 살구에 굵은 소금을 켜켜이 채우고 그 위에 싱싱한 자소엽을 듬뿍 덮어주면 붉은 보랏빛을 띠는 자태 고운 우메보시가 된다. 그러나 요즘 우리가 먹는 살구는 개량종이어서 절임용으로는 적합치 않다.
살구의 속씨, 행인에는 기름과 아미그달린, 단백질 등의 성분이 들어 있다. 기름에는 불포화지방산인 올레인이 50% 들어 있다. 냉압착 방법으로 기름을 추출해 기침이나 천식·가래를 삭이는 목적으로 음용하거나 고약의 원료로 쓴다. 약용성분인 아미그달린은 암세포를 선택적으로 억제하고 죽게 한다고 알려져 최근엔 항암제로도 쓰인다. 아미그달린의 특성상 직접 먹으면 독성분이 빨리 생기지만 주사를 하면 여러 단계를 거쳐 분해효소가 되기 때문에 독이 천천히 생긴다고 한다. 그래서 과일을 설탕이나 소금에 절임할 때 씨앗을 제거하는 사람들도 있다. 아미그달린은 매실·사과·벚나무·접골목·포도 등 다양한 씨앗에 들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