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물이 되어
/ 강은교
우리가 물이 되어 만난다면
가문 어느 집에선들 좋아하지 않으랴
우리가 키 큰 나무와 함께 서서
우르르 우르르 비 오는 소리로 흐른다면
흐르고 흘러서 저물녘엔
저 혼자 깊어지는 강물에 누워
죽은 나무 뿌리를 적시기도 한다면.
아아, 아직 처녀인
부끄러운 바다에 닿는다면
그러나 지금 우리는
불로 만나려 한다.
벌써 숯이 된 뼈 하나가
세상에 불타는 것들을 쓰다듬고 있나니
만 리 밖에서 기다리는 그대여
저 불 지난 뒤에
흐르는 물로 만나자
푸시시 푸시시 불 꺼지는 소리로 말하면서
올 때는 인적 그친
넓고 께끗한 하늘로 오라
'♣ 산마을 詩情 산책 > 한국대표시인이 추천한 애송시100편' 카테고리의 다른 글
삽 /정진규 (0) | 2017.01.26 |
---|---|
님의 침묵 /한용운 (0) | 2017.01.26 |
저녁 눈 /박용래 (0) | 2017.01.24 |
사슴 /노천명 (0) | 2017.01.23 |
묵화(墨畵) /김종삼 (0) | 2017.01.2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