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산마을 詩情 산책/한국대표시인이 추천한 애송시100편

생명의 서 /유치환

산마을 풍경 2017. 1. 15. 10:59

생명의 서

                                                                       

 

 

                                                                  유치환

 

나의 지식이 독한 회의(懷疑)를 구하지 못하고,

내 또한 삶의 애증(愛憎)을 다 짐지지 못하여

병든 나무처럼 생명이 부대낄 때,

저 머나먼 아라비아의 사막(沙漠)으로 나는 가자.

 

거기는 한 번 뜬 백일이 불사신같이 작열하고

일체가 모래 속에 사멸한 영겁의 허적에

오직 알라의 신()만이

밤마다 고민하고 방황하는 열사(熱沙)의 끝.

 

그 열렬한 고독(孤獨) 가운데

옷자락을 나부끼고 호올로 서면

운명처럼 반드시 ''와 대면(對面)케 될지니.

하여 '', 나의 생명이란

그 원시의 본연한 자태를 배우지 못하거든

차라리 나는 어느 사구(沙丘)에 회한 없는 백골을 쪼이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