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산마을 詩情 산책/시인이 쓰는 산문

작약꽃 향기에 밀려 오는 그림움

산마을 풍경 2024. 2. 5. 23:56

작약꽃 향기에 실려오는 그리움

 

 

 

 

작년에 약초 농원 일부를 평탄하게 정리하고 농막 앞에 깔밋한 화단을 만들었다. 국화, 수국, 봉숭아 등 여러 꽃들을 심었다. 삭막한 농장이 제법 아늑하고 환해졌다. 내가 몸이 불편하여 농사일을 못하는 관계로 아내가 모든일을 도맡아서 하고 있다. 나는 작은 화단을 만들어 겨우 꽃을 심고 가꾸는 일을 조금하고 있다. 내가 또 화단 가꾸기에 열심인 이유는 아내에게 미안함을 덜어 보려는 뜻도 있다. 아내는 농원 일하는라고 바빠서 제대로 꽃을 감상할 여유도 없다고 푸념을 한다.

 

5월이면 어릴적 고향 텃밭에는 작약꽃이 그득했다. 분홍, 빨강, 힌색으로 치창한 작약꽃은 정말 환상적이었다.

작약은 뿌리를 한약재로 이용하는 다년생 식물로 한방에서 매우 중요한 약재이다. 어머니는 작약 꽃망울이 통통하게 부풀어 오르면 꽃대를 30CM 정도 잘라서 꽃을 시장에 내다 팔았는데, 꽃장사가 사러 오기도 했다. 보통 3-4년정도 길서서 뿌리를 캐서 팔고 촉은 다음해 봄에 다시 심었다. 작약은 꽃과 약초로 수입을 올리는 일석이조인 샘이었다. 화단에 작약을 심기로 한 것은 꽃도 화사하고 이쁘지만 어린 시절 이런 추억이 있기 때문이었다.

 

50여년 전에 아버지는 산 아래 별 쓸모가 없는 구석진 밭에도 작약을 심으셨다. 얼마 전에 성묘를하고 그 밭에 가보니 아직 작약이 더러 있었다. 무척 반가웠다. 작약도 생명력이 강한 식물인가 보다. 잡초 속에서 아직도 살아 있다는 것이 대견하고 고마웠다. 몇 뿌리를 케 와서 화단에 심었다. 두포기가 죽고 3포기가 살았는데 올해 꽃을 피우지 못해서 많이 아쉬웠다. 혹시죽을까 염려 되어 해서 올해 인터넷 시장에서 2뿌리를 구입하기도 했는데, 그 것은 전에 밭에서 캐온 것만큼 애정이 가지 않는다.

작약꽃 향기 속엔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도 함께 베어있어 작약을 심으려고 했던 것이다. 어머니는 작약을 관상용으로 재배했던 것은 아니지만 텃밭에 흐물스럽게 핀 작약 꽃을 바라보는 것은 아주 흐뭇하고 즐거운 일이었다. 작년에 여러 가지 꽃들을 다붓하게 심었더니 올해는 제법 화단이 근사하다. 4월부터 다투어 꽃을 피우기 시작하더니 6월이 되니 다알리아가 검붉은 꽃을 화려하게 피웠다. 우리 화단에서 으뜸은 단연 봉숭아다. 옜날에는 붉은 꽃 뿐이었는데 근래에는 꽃 색깔이 무척 다양하다. 작년에 여러 가지 봉숭아씨앗을 부렸더니 올해는 저절로 나서 군락을 이루어 꽃을 피웠다. 고맙다. 대여섯 가지 꽃이 핀다. 약초농원에도 이런 저런 약초꽃과 야생화가 철따라 피지만 봉숭아 만큼 화려하지는 않다. 어릴적 누이들은 손톱에 봉숭아 물을 들인다고 꽃을 따서 소금을 넣고 돌로 이겨서 손톱에 붙였다. 하룻밤 자고 나면 신기하게도 손톱에 곱게 붉은 물이 들었다. 오늘 아내가 손톱에 봉숭아 꽃물을 들여 보자고 한다.

 

봉숭아 꽃으로

빨갛게 물든 손톱이

꽃보다 이쁘다.

얼마나 오래갈까?

하얀 송이 눈이 펑펑 내릴 때까지

꽃물이 남아 있으면 좋겠다.

 

2023.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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