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문 호박에 대하여
여름내 더위에서 서서히 해방 되는 느낌이다. 코로나가 엄존하는 세상에서 사는 것이란 정말 힘들다. 무엇보다도 인간 관계를 단절시키는 것이 사람들을 가장 힘들게 한다.
귀촌한 후 아내가 텃밭에 채소를 조금씩 여러 가지를 심었다. 오이, 가지, 호박, 고추 등이다. 처음에는 농사가 엉망이었는데 해가 지나면서 조금씩 익숙해 져가는 모양이다. 김장 무를 심었는데 잎에 구멍이 숭숭났다. 그래도 농약은 절대로 치지 않겠다고 한다. 우리 가족 농약 안 친거 먹으려고 하는 것인데 절대로 농약은 칠 수 없다는 것이다. 사실 농약을 안치고 농사가 잘 되기를 기대하는 것은 어렵다. 농사를 지어보니 시중에서 만나는 아주 깨끗한 채소들은 조금 의심이 간다. 농약을 많이 쳤을 것 같다.
올해 5월에도 시장 종묘상에서 호박 모종을 사다 심었다. 일부는 씨앗을 심기도 했는데 정성으로 가꾼 탓에 농사가 잘 되었다. 농약을 단 한번도 하지 안았는데도 실하게 잘 자랐다. 모종을 여러군데서 샀더니 호박 모양도 다양하다.
심심하면 들러서 따다 먹겠다면서 서울 사는 친구도 멀리까지 와서 호박 모종을 심었다. 우리 밭에까지 오려면 2시간 반정도 걸린다. 호박을 세 번에 걸쳐서 심었는데 모양이 다 다른 품종이다. 처음에 5포기를 심었다가. 욕심이 나서 5포기를 더 심고 서울 친구가 나중에 또 사가지고 와서 심었더니 밭둑이 온통 호박 줄기로 가득하다
여름 내 땀 흘리며 가꾼 보람이 있었다. 가지, 오이, 호박, 참외가 탐스럽고 풍요롭게 열렸다. 시장에 가면 흔한 게 채소지만 아내가 굳이 심어서 가꾸는 것은 어린 식물을 정성으로 심어서 자라는 모습이 대견기도 하고 무엇보다 농약을 치지 않고 길러서 친환경 채소를 먹기 위함이다. 여름 내내 무공해 채소들을 마음껏 먹을 수 있었다. . 줄기마다 호박이 열리니 숫자가 엄청 많다. 여름에 호박만한 식재료가 있을까? 우리집은 호박외에도 호박잎도 쌈으로 즐겨 먹는다. 호박꽃도 순대처럼 이용한다. 호박 줄기나 순을로 된장찌개를 끓이면 정말 일품이다. 호박은 버릴 것이 하도 없다.
지인들에게 나누어 주기도 하였지만 미쳐 따지 못하여 큰 것은 익어서 늙은 호박이 되게 남겨 두었다. 8월이 되자 호박이 크고 누렇게 익기 시작했다. 밭둑 군데군데 늙은 호박이 자리잡고 있다. 호박을 바라만 보아도 푸근하고 부자가 된듯하다.
그다지 많은 노력을 하지도 않았는데 풍성한 수확을 안겨주니 고맙기 그지없다.
아내는 요즘 호박 보는 재미로 산다며 즐거운 비명을 지른다.
10월이 되니 호박이 잘 익었다. 친구, 형제들과 처가댁 식구들에게 하나씩 나누어 줄 것이다. 호박을 시장에서 사도 되겠지만 농약이나 비료를 하지 않았다고 하면 다들 너무도 좋아하다.
올해는 욕심많은 서울 친구가 많이 따가는 바람에 친구나 친척들에게 나누어 줄것이 거의 없다. 조금 아쉽다.
늙은 호박은 용도가 다양하다. 우선 호박죽을 쑤면 달고 맛있다. 호박고지를 해서 시루떡을 해먹거나 겨울에는 묵은지를 넣고 호박국을 끓여 내면 시원학 달달해서 해장국으로도 안선마춤이다. 또 늙은 호박은 산모에게 특히 좋다고 한다.
친구가 호박을 많이 가져가더니 얼마 후에 달인 호박즙 두박스 보냈왔다. 온식구들이 먹었다. 호박을 달이는데 아무 것도 넣지 않았다고 했다. 막내딸을 주려고 했는데 먹지를 않는다. 요즘 젊은이들 취향에는 맞지 않는가보다.
일년내내 보는 즐거움과 풍요로움을 선사하는 호박이 고마울 따름이다.
2020. 4.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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