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산마을 詩情 산책/내가 사랑하는 詩

주막에서/천상병

산마을 풍경 2021. 2. 18. 21:26

주막에서

 

 

천상병

 

골목에서 골목으로

거기 조그만 주막집

할머니 한 잔 더 주세요

저녁 어스름은 가난한 시인의 보람인 것을……

흐리멍텅한 눈에 이 세상은 다만

순하디순하게 마련인가,

할머니 한 잔 더 주세요

몽롱하다는 것은 장엄하다

골목 어귀에서 서툰 걸음인양

밤은 깊어가는데,

할머니 등뒤에

고향의 뒷산이 솟고

그 산에는

철도 아닌 한겨울의 눈이 펑펑 쏟아지고 있는 것이다

그 산 너머

쓸쓸한 성황당 꼭대기,

그 꼭대기 위에서

함빡 눈을 맞으며, 아기들이 놀고 있다

아기들은 매우 즐거운 모양이다

한없이 즐거운 모양이다

'♣ 산마을 詩情 산책 > 내가 사랑하는 詩' 카테고리의 다른 글

봄 날의 부처님/김애리나  (0) 2021.04.27
소릉조/천상병  (0) 2021.03.09
귀천  (0) 2021.02.14
  (0) 2021.01.18
강가에서/고정희  (0) 2021.01.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