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休 心 停<휴심정>/알짜 뉴스, 만평

이미지화하기

산마을 풍경 2020. 5. 16. 18:24

3. 이미지화하기

 

 

 

 

원시 시대는 언어와 사물이 하나로 결합된 상태였습니다. 이를 회복시키는 방법이 바로

 

 

 

 

 

시인은 바다여!’하고 부르면 실제로 짙푸른 파도가 밀려오고, ‘파도여, 멈추어라라면 조용해지길 꿈꿉니다.

그래서 저도 언젠가 태풍 속에 휘날리는 치자꽃을 표현하기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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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랑 팔랑 하양 팔랑 팔랑 팔랑 하양 팔랑 팔랑 팔랑 하양 팔랑 팔랑 팔랑 하이양 하양 팔랑 팔랑 하양 하양 하이양 팔라당 팔랑 팔랑 팔랑 하이양 하이양 팔랑 팔랑 팔라당 하양 팔랑 팔랑 팔랑 팔랑 팔랑 팔랑 팔랑 하양 하양 하양 팔랑 팔랑 팔랑 하양 팔랑 팔랑 팔랑 하이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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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라고 써봤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써도 치자꽃이라는 말은 치자꽃으로 바뀌지 않대요.

이 장에서는 먼저 추상화된 언어에 사물성(thingness)을 회복시키기 위해 작품은 어떤 과정을 거쳐 전달되며, 이미지에는 어떤 유형이 있는가 알아본 다음 이제까지 써온 작품들을 이미지화시켜 보기로 합시다.

 

 

  1. 이미지화의 필요성

 

 

19세기까지 시는 시인의 사상과 감정을 운율적인 언어로 표현한 것이라고 정의해 왔었습니다. 그러나, 20세기로 접어들면서 이런 정의는 차츰 흔들리기 시작하고 있습니다. 자유시가 등장하면서 시 창작 방법이 운율 배제하고 이미지(image)를 중시하는 쪽으로 바뀌왔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현대시를 중심으로 정의를 내리면, <시란 시인의 사상과 감정을 심상적(心象的) 언어로 표현한 것>이라고 바꾸어야 할 것입니다.

이와 같이 시가 이미지 중심으로 바뀐 데에는 여러 가지 원인이 있으나 보다 근본적인 것은 아래와 같이 언어가 추상적 기호에 불과함을 자각했기 때문이라고 보아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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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 인

                                                                (subject : S)

                                                                       ↙ ↘

                                                                       ↙ ↘

                                                    언 어 ⇠  ┈┈┈┈┈┈┈┈┈ 관련 사물

                                   (Language: L) 자의적 관계 (Object : 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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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도표에서 보는 바와 같이 시인은 어떤 생각(S)을 떠올리면 자동적으로 관련된 언어(L)와 사물(O)를 떠올립니다. 그리고 어떤 사물(O)을 접해도 거의 자동적으로 그에 대해 생각하고(S), 사고는 언어로 이뤄지므로 관련된 언어(L)를 떠올립니다. 그래서 근대까지 대부분의 시인들은 독자들이 작품을 읽으면 관련 사물과 자기 생각을 이해하리라고 믿어 왔습니다.

그러나 독자들의 입장에 서면 사정은 전혀 달라집니다. 독자들이 처음 접하는 것은 시에 쓰인 언어(L)입니다. 그리고 이 언어는 의미를 강제로 결합시킨 기호이고, 독자들은 기호를 통해 시인이 지시하는 사물이나 관념을 떠올려야 합니다.

이때, 독자들은 문맥(context)의 전후 관계를 살피면서 작품에 쓰인 어휘와 자기가 알고 있는 어휘의 의미를 대조하기 시작합니다. 독자가 적용하는 어휘의 의미는 <사전적(lexical)>이고, <일상적(ordinary)>이며, <지시적(denotation)>입니다. 반면에 시인이 작품 속에서 사용하는 어휘는 <개인적(personal)>이고, <특정적(specific)>, <함축적(connotation)>입니다. 그리고, 어휘의 양이나 배경 지식은 물로 경험과 의식구조 역시 달라 제대로 전달되는 경우가 드뭅니다. 그로 인해 시인이 말하고자 하는 바를 언어로 그림을 그려 보여주는 방향 쪽으로 바뀌게 된 것입니다.

물론 언어의 추상성 때문에 고통을 받은 것은 현대 시인들만이 아닙니다. 과거의 시인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대로 접어들어 새삼스레 문제가 제기된 것은 자유주의 내지 개인주의 사상이 팽배함에 따라 시의 화제가 <보편적인 것특수한 것>, <공적(公的)인 것사적(私的)인 것>, <시적인 것비시적인 것>, <자연적인 것기계적인 것>으로 바뀌고, 각성(覺醒)한 상태에서 읽도록 만들기 위해 운율을 제거한 데다가, 독자들 역시 시인으로부터 설교를 듣기보다 스스로 보고 판단하려는 쪽으로 바뀌었기 때문입니다. 러시아 시인 포테브냐(A. Poteb-nya)가 이미지 없는 시는 상상할 수 없다며 절대론을 주장한 것도 이 때문입니다.

이미지의 중요성을 보다 본격적으로 내세운 사람들은 이미지스트들입니다. 1908년부터 흄(T. E. Hulme)을 중심으로 모이던 <시인 클럽(Poet's 몇 명의 이미지스트 시인들(Some Imagist Poets)를 통해 아래와 같은 요지의 선언문을 발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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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적 언어로 쓰되 정확한 언어(exact word)로 쓸 것. 모호하거나 장식적(裝飾的)인 말은 사용하지 말 것.

새로운 운율이 새로운 사상임을 자각하고, 새로운 감정을 표현하기 위해 새로운 자유시 리듬을 창조할 것. 우리가 자유를 위해서 싸우듯, 자유시를 위해서 투쟁할 것.

시의 제재 선택에서 자유로워질 것. 그러나 비행기와 자동차 같은 것들만 새로운 제재라고 생각하지 말 것.

가능한 명확한 이미지로 대상을 개별화하여 그릴 것. 그러나 사물을 그대로 그리는 화가의 한 유파는 아님.

견고하고 분명한 구조를 택할 것.

긴축(緊縮)과 집중(集中)을 시의 본질로 받아들일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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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의 주장을 좀더 요약하면, 자유시의 화제는 비행기자동차같은 새로운 문물이 아니라 새로운 깨달음이며, 이를 표현하기 위해 새로운 리듬을 만들어내야 하고, 본질적인 비유(essential metaphor)로 그려야 한다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런 운동은 파운드의 지도를 받아 문단에 나선 엘리엇(T. S. Eliot)와 대학 강단에서 독자적으로 활동하던 리처즈(I. A. Richards)에 의하여 구체화됩니다. 그리고 이들의 영향을 받은 미국 남부 밴트빌트(Vanderbilt) 대학의 랜섬(J. C. Ransom) 교수와 제자들인 테이트(A. Tate), 워렌(R. P. Warren), 브룩스(C. Brooks)로 대표되는 <신비평(New-Criticism)>에 의해 현대시의 이념으로 자리를 잡습니다.

이와 같은 이미지의 기능은, 첫째로 시의 의미를 육화(肉化, incarnation)화는 기능을 꼽을 수 있습니다. 그것은 다음 작품을 살펴봐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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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는

꽃잎에 닿자 한 마리 나비가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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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는

소리와 뜻이 찢긴 깃발처럼

펄럭이다가

쓰러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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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의 둘레에서

밀물처럼 밀려오는 언어가

불꽃처럼 타다간 꺼져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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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언어는

꽃잎을 스치자 한 마리 꿀벌이

됩니다.

문덕수(文德守), 꽃과 언어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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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품에서 언어는 꽃잎에 닿자마자 한 마리 나비가 되고, ‘깃발처럼 펄럭이고, 다시 꿀벌이 되는 것으로 그리고 있습니다. 시인이 이와 같은 제재를 선택한 것은 언어는 단지 의사 전달의 도구가 아니라 하나의 존재이며 생명과 에너지를 지녔다는 자신의 언어관을 전달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런데 이런 제재는 설명하는 방식으로는 제대로 전달되지 않습니다. 시인이 말하고 하는 바가 일상에서 체험할 수 있는 것들이 아니라 논리적 추론과 사유의 결과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시인은 자기 관념과 유사한 것들을 비유물로 내세우고, 그를 이미지화하는 방법을 택하고 있습니다. 이미지는 비실재적인 관념까지도 육화하여 실재(實在)처럼 만드는 기능을 지니고 있기 때문입니다.

둘째로, 대상의 모습을 모방적으로 재현하는 기능을 꼽을 수 있습니다. 이 때 모방의 대상은 <시인의 관념 속에 존재하는 것><외부에 객관적으로 존재하는 것>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앞에서 인용한 문덕수(文德守)의 작품은 시인의 내부에 존재하는 관념이라면 다음 작품은 외부에 객관적으로 존재하는 대상을 모방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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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는 뿔뿔이

달아나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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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 도마뱀떼 같이

재재발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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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리가 이루

잡히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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흰 발톱에 찢긴

산호(珊瑚)보다 붉고 슬픈 생채기!

정지용(鄭芝溶), 바다 9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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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품을 읽어보면 잔물결이 재재발리며 흩어지는 여울목 풍경이 눈앞에 선히 떠오릅니다. 그것은 언어로 시적 대상을 재현했기 때문입니다.

셋째로, 새로운 사물의 창조 기능을 꼽을 수 있습니다. 이와 같이 외부에 객관적으로 존재하는 사물을 그려도 물자체(物自體)만 재현하는 것은 아닙니다. 시인이 어떤 대상을 선택하여 이미지화하는 것은 그를 통해 무엇인가를 이야기하기 위해서이고, 그로 인해 정도의 차이는 있을망정 시인의 정신을 은유하게 됩니다.

반대로 관념을 이미지화해도 허상(虛像)에 그치지 않고 실재체(實在體)처럼 바뀝니다. 이미지화하려면 시간과 공간을 설정하고, 대상 그 자체에물질적 감각을 부여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다음 작품을 살펴보아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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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이가 듣는 음악 속으로 늦게 들어오는

남자가 보였다 나는 그게 싫었다 내 음악은

죽음 이상으로 침침해서 발이 빠져나가지

못하도록 잡초가 돋는데, 그 남자는

누구일까 누이의 연애는 아름다와도 될까

의심하는 가운데 잠이 들었다

- 이성복(李晟福), 정든 유곽에서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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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품은 얼핏 읽으면 음악을 들으며 어렴프시 잠이 드는데 누군가 누이 방으로 들어오는 것 같아 확인하려고 했으나 잠에 취해 그냥 잔 것을 은유화한 것으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좀더 꼼꼼하게 읽으면 음악 속에 잡초가 돋고, 실제로 음악의 파장 속으로 어떤 사내가 들어오고 있습니다. 따라서 현실의 어떤 풍경을 모방적으로 재현한 것이라고 해도 결과적으로는 이미지의 기능을 이용하여 새로 창조한 풍경으로 보아야 할 것입니다.

넷째로, 독자의 자율적 해석권(解釋權)의 확대 기능을 꼽을 수 있습니다. 이와 같이 대상을 그리기 위해서는 시인은 발언을 자제해야 합니다. 발언을 자제한 채 대상을 그리면 물자체만 드러나게 됩니다. 그리고, 독자들은 그를 의미 있는 그 무엇으로 만들기 위해 자기 나름대로 해석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로 인해 이미지 중심으로 쓴 작품은 독자들이 스스로 해석할 권리가 확대됩니다.

다섯째, 작품의 구조화 기능을 꼽을 수 있습니다. 이미지화한 부분은 그냥 서술한 부분보다 독자의 시선을 끌어당깁니다. 그리고 시선을 끌어당기는 부분과 배경으로 물러난 부분은 자연히 대조됩니다. 뿐만 아니라 시인이 애써 이미지화한 부분을 독자들이 유의해서 받아들이도록 만들기 위해서는 문형은 물론 행과 연의 배치까지 달리합니다. 그러므로 이미지화는 그 작품의 구조를 결정하는 요소 가운데 하나라고 보아야 할 것입니다.

주제의 우열이 사라진 현대시에서는 이미지화의 능력이 곧 그 시인의 창작 능력을 결정짓는 요소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다른 장르도 마찬가지라고 할 수 있습니다. 앞에서도 말했지만, 이 시대의 예술의 어법이 말하기에서 보여주기로 바뀌었기 때문입니다.

자아, 그럼 이제까지 쓴 작품들을 이미지화하면서 고쳐 보기로 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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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들이 할 일

이미지의 기능을 시작 노트에 정리해 두시오.

자기 작품 가운데 관념화된 부분을 찾아 이미지화해 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