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산마을 詩情 산책/내가 사랑하는 詩

길위에서/나희덕

산마을 풍경 2019. 7. 17. 14:26

 

길위에서

 

 

 

 

 

나희덕

길을 잃고 나서야 나는

누군가의 길을 잃게 했음을 깨달았다

그리고 어떤 개미를 기억해내었다

눅눅한 벽지 위 개미의 길을

무심코 손가락으로 문질러버린 일이 있다


돌아오던 개미는

지워진 길 앞에서 두리번거리다가

전혀 엉뚱한 길로 접어들었다

제 길 위에 놓아주려 했지만

그럴수록 개미는 발버둥치며 달아나 버렸다


길을 잃고 나서야 생각한다

사람들에게도

누군가 지나간 자리에 남는

냄새 같은 게 있다는 것을,

얼마나 많은 인연들의 길과 냄새를

흐려놓았던지, 나의 발길은

아직도 길 위에서 서성거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