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休 心 停<휴심정>/역사 산책

서해의 성지 간월암

산마을 풍경 2017. 2. 8. 19:03

서해의 성지,간월암 [看月庵]  

 
간월암은 본래 천수만의 한가운데인 간월도에 붙어 있는 섬중의 섬이었다. 조석의 간만에 따라 밀물이 되면 간월도와 분리되었다가 썰물이 되면 간월도에서 50미터 정도의 모래톱을 따라 도보로 건널 수도 있는 작으마한 섬이다! 간월도는 부석면 창리로부터 전마선을 타면 40여분이나  걸리던 궁벽한 곳이었다. 1980년대에 태안군 남면 당항리 - 부석면 창리- 간월도 - 홍성군 서부면 궁리를 잇는 7,704m의 방조제를 막아 155.94km2의 간석지를 만들었다. 대 역사였던 이 사업은 유조선 물막기 공법등 수 많은 일화를 간직한 채 1987년 완공되어 천수만의 일부 지역은 광활한 농경지가 되었다.
 
천수만은  말 그대로 얕으막한 바다였다. 수심이 10m가 안되므로 대형의 배는 접근 불가였고 드넓은 펄과 수중 수초가 밀생하여 고급 어종인 농어,도미,민어,숭어의 산란지였다. 한 마디로 황금어장이었던 셈이다. 남쪽으로는 대천 넓은 바다로 연결되고 북으로는 안면도 상류와 태안의 좁은 해협으로 황해 바다와 연결되니 황해의 거친 태풍과 높은 파고를 안면도가 방파하는 천혜의 안온평정의 바다이었던 셈이다. 젓새우 또한 풍부하여 광천 새우젓갈 시장의 원천이 되었고, 천연의 광천김 또한 생산량이 많았다. 상류는 가야산,성왕산,부춘산에서 발원하는 양대천,해미천으로 연결된다. 양대천 하류에는 염전이 있었으니 이곳에서부터 양대교까지 바닷물이 드나들었다. 해미천의 하류에는 해미읍성이 있었으므로 이곳까지 바닷물이 밀려 들었을 것이다. 방조제 공사의 영향으로 이제 바닷길은 백리 정도 이격되었다. 벽해 상전이 된 것이다!
 
간월암은 무학대사와의 관계를 뺀다면 좀 허전하다. 무학대사의 탄생 설화와 득도와도 연결이 된다.
 
대저 유명한 인물의 탄생설화는 신묘하다. 12년동안 유학을 공부한 뒤 지리산에서 10년을 수도하던 부친과 10년 묵언 수행중이던 모친의 만남부터가 예사롭지가 않다. 태몽은 두 가지가 전하는데, 햋빛을 품에 안는 꿈과 물에 떠내려 가는 큼직한 오이를 주어 먹은 뒤 잉태하였다는 이야기이다. 18세에 지리산에 입산하여 도인의 지도하에 3년 수도하였고, 21세에 조계산 송광사의 소지선사에게서 구족계계와 무학이라는 법명을 받았다. 이후 용문산의 혜명국사,법장국사의 지도를 받았고, 22세에 진주 길상사에서 수도하였고, 25세에 묘향산 금강굴에서 수도중 오도송을 읊었으며, 26세에 원나라 연경에 유학하였고, 27세에 법천사 나옹선사를 수학했다. 29세에 귀국하여, 33세에 스승 나옹선사와 함께 이자춘의 묘소를 정하였다. 1384년 안변의 설봉산 토굴에서 수도중 청년 장군 이성계의 왕짜꿈을 해석하여 석왕사를 창건케 하였으며, 오백나한을 받들게 했다. 1392년 조선의 개국과 함께 태조 이성계에 의해 왕사로 받들어졌고, 묘엄존자란 칭호를 하사 받았다. 1394년 한양 천도의 일등 공신이 되었으며 한양성의 창건에 기여한 바가 많았다.
 
청산녹수아진면  명월청풍수주인  막위본래무일물  진진찰찰법왕신
 
으로 읊어지는 게송은 기록에 의하면 25세에 묘향산 금강굴에서 읊은 것으로 되어 있는데, 간월암에서 득도하였다 하는 것은 또 무엇인가! 기록을 검토해 보면 간월암에서 수도한 기록은 보이지 않는다. 그렇다면 유추해 볼 수 있겠는데, 29세와 33세 사이가 간월암에서 수도하여 득도한 시기가 될 것이다. 득도한 이후 새로운 왕조를 창립할 주인공을 찿아 안변으로 옮겨 갔고 그 곳에서 청년 이성계의 꿈을 해석했다 하는 것이 맞을 것이다.
 
 
 
 
그렇다면 대략 출가한지 15년만에 득도한 것이 된다. 득도란 니르바나의 경지, 서프림 위즈덤을 얻었다는 것인데 득도 이후의 무학대사의 행적을 살펴 볼 때에 선견지명, 선지자, 예언의 능력을 얻었다 할 것이다. "80,000가지 행실중에 영아행이 제일이다"라고 설파한 바와 같이 익살스럽고 천진난만하며 순진무구한 일생이 오늘날까지 전해 온다! 
 
 
 
간월도는 어리굴젓으로 유명하다. 굴의 크기는 유난히 작은편이며 탄력은 강하다. 다른 곳과 달리 굴의 아가미 부분이 유난히 조밀하여 양념이 잘 배어든다는 얘기인데, 무학대사가 태조에게 진상한 이후 이 어리굴젓은 서산의 특산품이 되었다. 위 조각상은 굴을 따는 여인네들을 묘사한 상이다. 사용하는 도구는 조새라 불리운다!
 
서해 성지로 일컬어지는 간월암과 간월도, 년간 수천만마리의 철새 탐조의 배수 갑문, 안면도의 관광단지,도비산 부석사의 의상대사와 선묘낭자의 전설과 템플스테이등으로 이어지는 길목인 이곳은 수 많은 관광객들이 지나가는 곳이 되었다. 간월암엔 이 지역의 특산인 모감주 나무가 있다. 영어로는 Golden Tree로 불리며, 그 열매는 금강자라 불리우고 염주를 만든다. 그 꽃은 난화로 불리우며 장염에 특효가 있다.
 
주변에 관광객들을 위한 드라이브 인 모텔이 많이 건축되었다. 
 
찿아가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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