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의 마을에 가서
고은
겨울 문의에 가서 보았다.
거기까지 닿은 길이
몇 갈래의 길과 가까스로 만나는 것을.
죽음은 죽음만큼 길이 적막하기를 바란다.
마른 소리로 한 번씩 귀를 닫고
길들은 저마다 추운 쪽으로 뻗는구나.
그러나 삶은 길에서 돌아가 잠든 마을에 재를 날리고
문득 팔짱 끼어서
먼 산이 너무 가깝구나
눈이여 죽음을 덮고 또 무엇을 덮겠는가.
겨울 문의에 가서 보았다.
죽음이 삶을 껴안은 채
한 죽음을 받는 것을 끝까지 사절하다가
죽음은 인기척을 듣고
저만큼 가서 뒤를 돌아다본다.
모든 것은 낮아서
이 세상에 눈이 내리고
아무리 돌을 던져도 죽음에 맞지 않는다.
겨울 문의여 눈이 죽음을 덮고 또 무엇을 덮겠느냐.
'♣ 산마을 詩情 산책 > 한국대표시인이 추천한 애송시100편' 카테고리의 다른 글
6은 나무 7은 돌고래, 열번째는 전화기 /박상순 (0) | 2017.01.14 |
---|---|
전라도 가시내 /이용악 (0) | 2017.01.14 |
그릇 1 /오세영 (0) | 2017.01.14 |
저녁의 염전 /김경주 (0) | 2017.01.14 |
혼자 가는 먼 집 /허수경 (0) | 2017.01.1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