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산마을 詩情 산책/한국대표시인이 추천한 애송시100편

성탄제 /김종길

산마을 풍경 2017. 1. 14. 15:43

성탄제 



 

 

 

김종길


어두운 방 안엔 

바알간 숯불이 피고, 


외로이 늙으신 할머니가 

애처로이 잦아드는 어린 목숨을 지키고 계시었다. 


이윽고 눈 속을 

아버지가 약(藥)을 가지고 돌아오시었다. 


아, 아버지가 눈을 헤치고 따 오신 

그 붉은 산수유(山茱萸) 열매 ― 


나는 한 마리 어린 짐승, 

젊은 아버지의 서늘한 옷자락에 

열(熱)로 상기한 볼을 말없이 부비는 것이었다. 


이따금 뒷문을 눈이 치고 있었다. 

그 날 밤이 어쩌면 성탄제(聖誕祭)의 밤이었을지도 모른다. 


어느 새 나도 

그때의 아버지만큼 나이를 먹었다. 


옛 것이란 거의 찾아볼 길 없는 

성탄제(聖誕祭) 가까운 도시에는 

이제 반가운 그 옛날의 것이 내리는데, 


서러운 서른 살 나의 이마에 

불현듯 아버지의 서느런 옷자락을 느끼는것은, 


눈 속에 따오신 산수유(山茱萸) 붉은 알알이 

아직도 내 혈액(血液) 속에 녹아 흐르는 까닭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