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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나무가 좋다. 산림문학.2020. 겨울호

산마을 풍경 2021. 1. 5. 09:53

나무가 좋다

 

 

 

 

나무가 좋다. 나무를 바라보는 마음은 언제나 평온하고 넉넉하고 든든하다.

나무는 우리에게 무한한 혜택을 주지만 우리는 잘 모르고 사는 것 같다.

나무는 우선 동물의 생명 유지에 없어서는 안 될 산소를 공급하여 준다. 한편 종이를 제공한다. 문자와 더불어 인류의 발전에 지대한 공헌을 한 것이 바로 종이다. 종이 위에 인간은 인류문화사를 기록으로 남기며 눈부신 발전을 거듭해 왔다. 나무는 인류가 화석 연료를 발견하기 전까지 인간의 추위를 해결해 준 너무도 고마운 존재이다. 나무가 인간에게 주는 혜택은 일일이 열거하기도 어렵다. 나는 산골에서 태어나고 자랐다. 내가 고등학교를 마칠 때까지 늘 나무에 의지하며 살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내 주변에는 늘 좋아하는 나무들이 있었다. 겨울 방학에는 나무를 깎아 썰매를 만들기도 하고 부엌에 땔 나무를 장만하기 위하여 산에 오르기도 하였다. 산골에서 자랐다고 다 그렇지는 않겠지만 나는 나무와 너무나 친숙하고 나무가 좋다. 어릴 적부터 나무를 좋아하여 나무를 기르고 돌보는 일을 하며 살나무와 함께 살고 싶었다. 그러나 나는 공학을 전공하여 나무와는 전혀 관련이 없는 일을 하며 살았다. 내가 다시 대학을 간다면 산림학과를 가고 싶다. 나무에 대하여 제대로 깊이 있게 공부하고 연구하여 나무와 함께하는 삶을 살고 싶기 때문이다. 내가 나무를 좋아하는 것은 나무는 너무나 정직하고 관대하다는 사실이다. 또한 나무는 순수하고 욕심이 없다. 나에게 정직하고 무욕의 삶을 가르쳐 준다. 누가 뭐래도 봄이면 잎을 틔우고 가을이면 다시 잎을 자신이 뿌리 내리고 사는 땅으로 돌려보낸다. 나무에게 진실하고 진지한 삶의 자세를 배운다. 마음이 답답하고 몸이 찌뿌둥할 때도 숲에 가면 이내 마음이 편안해지고 금세 머리도 맑아진다. 이름 봄 나무들이 잎을 막 틔우기 시작 할 때는 그 모습이 얼마나 순수하고 고운지 모른다. 여름에는 무성한 잎을 피워서 그늘을 만들어 준다. 여름철 나뭇그늘 아래 앉아서 시원한 바람을 맞으면 가슴속에 응어리진 시름을 모두 잊을 수 있어서 좋다. 가을이면 온갖 과실과 열매를 우리에게 베푼다. 수척해진 겨울 숲에서도 나무는 너무나 당당하다. 그런 겨울나무 앞에서면 나약한 나도 당당해 진다. 모진 비바람 다 견디고서 추위와 맞서면서도 조금도 주눅들지 않는 그 모습도 마음에 든다. 겨울나무를 보면 삶에 지친 나의 어깨를 기대고 싶어진다. 나무는 누구에게나 평등하게 자신의 모든 것을 베풀어 준다. 누구든 편안하게 보듬어 안아준다. 이런 나무에게서 겸손과 인내와 기다림을 배운다.

 

농사를 하시던 부모님께서 내게 1000여 평의 밭을 물려 주셨다. 수십 년간 농사를 지으시던 땅인데 부모님이 돌아가시고 오랬 동안 경작을 하지 않아서 묵밭이 되었다. 어느 날 가보니 밭이 산처럼 변해 있었다. 나는 15년 전부터 이곳에 나무를 심기 시작했다. 늦었지만 지금부터라도 평생 염원이었던 나무와 함께하는 삶을 살기 위함이었다. 우선 내가 좋아하는 마가목, 산사나무, 헛개나무, 가시오가피, 보리수, 엄나무 같은 약용나무와 복숭아나무, 감나무, 살구나무 등의 과수를 심었다. 처음 심을 때는 이 어린 묘목이 언제 자라서 어른나무가 되고, 열매가 열리고 숲이 될까? 하고 생각하니 아득하게만 여겨졌다. 나는 지금도 매해 4월이면 나무를 심는다. 나에게 나무를 심는 일은 그 어떤 일보다도 행복하고 즐겁다. 나무를 심을 수 있는 땅을 물려주신 부모님께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나무를 심기 시작하고부터는 한가롭지가 않다. 매일 매일 나무를 보살펴 주어야 한다. 나무는 심는 것으로 끝이 아니다. 어릴 적에는 무척 신경을 쓴다. 주변에 잡풀이 많으면 어린나무는 풀에 치여서 잘 자라지 못한다. 잡풀을 제거해 주어야 하는데, 풀이 무성하여 예초기로 제초 작업을 하다가 나도 모르게 공들여 심어 놓은 나무들을 베어 버리는 경우도 종종 있었다. 이럴 때면 여간 마음이 불편한 것이 아니다. 나무에게 미안하기도 하고 죄를 짓는 것만 같아서 며칠을 두고 마음고생을 하게 된다. 나무는 사람의 따스한 손길만 주면 대부분 무럭무럭 잘 자란다. 나무는 주인을 배신하지 않는다. 나무들이 잘 자라는 모습을 보면 그렇게 대견하고 믿음직스러울 수가 없다. 15년 전부터 매해 4월이면 나무를 심고 있는데 아직도 나무 심을 땅이 남아 있어서 너무나 행복하고 감사하다. 우리 나무밭에는 나무들이 잘 자라서 성목이 된 것도 상당히 많다. 이제는 잘 어우러지는 이 되었다. 내가 정성을 다해 기른 풍성해진 숲을 보면 마음이 너그러워진다. 마음이 절로 넉넉하고 푸근해진다. 어른이 된 나무들은 내게 매년 풍성한 한약재를 선사하고 있다. 내가 나무에게 주는 것은 별로 없는데 나무들은 매년 나에게 여러 가지 무공해 과일과 많은 한약재들을 안겨 준다. 내가 받는 선물이 지나치게 많은 것 같아 미안하고 고맙다. 나도 나무에게 받은 것을 주변 지인들에게 조금이나마 나눔하며 살고 있다. 내 것을 누구에게 나누어 줄 수 있다는 것은 정말로 기분 좋은 일이다. 사실 나무를 키우는 일은 많은 인내심을 필요로 한다. 공산품처럼 하루 아침에 뚝딱 큰 나무로 만들 수 없기 때문이다. 물도 주고 거름도 주고 가지치기도 해주어야 한다. 때로는 수형을 잡아주고 접목도 한다. 자식을 돌보는 것처럼 세심하게 보살피며 기다려 주어야 한다. 그래야 튼실하고 건강한 나무로 자라게 된다. 나는 오늘도 나무들을 보듬으며 신나는 하루를 보냈다. 내곁에 나무와 숲이 있어서 더 없이 좋다. 나무에게 고맙다. (2019.11.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