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북도 봉화군 춘양면 석현리의 각화사는 신라 문무왕 16년(676년)에 원효대사가 세운 절로 지금의 춘양고교 교정에 자리잡고 있던 남화사를 없애고 새로 사찰을 세우면서 옛 절을 생각한다 하여 각화사라고 이름지었다 한다. |
< 가는 길 > 봉화(15km)-물야국민학교(6km)-오전약수터(10km)- 서벽국교(8km)- 각화사 입구(9km)-춘양삼거리 |
찾아 가는 길 - 대중교통 | |
춘양에서 각화사 입구인 석현마을까지 1시간 간격으로 버스 운행, 30분 소요. 석현마을에서 걸어서 30분 정도. |
고운사 |
경북 의성의 고운사는 조계종 제16교구의 본사로 의성, 안동, 영주, 봉화, 영풍의 5개군과 54개의 말사를 관장하고 있다. 681년 의상(義湘)이 창건하여 고운사(高雲寺)라 이름지었으나 후에 최치원이 운화루를 건립하며 자신의 호를 따서 고운사(孤雲寺)로 한자 이름을 바꾸었다. 그후 여러 번의 중창을 거쳐 현재에 이르고 있으며, 가운루(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151호), 석조 석가여래좌상(보물 제246), 고운사 삼층석탑(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28호) 등의 문화재가 있다. 고운사의 우화루 외벽에는 호랑이 그림이 있는데 그 호랑이 그림이 묘해서 어느 각도에서든 보는 사람을 주시하는 느낌을 준다고 한다. 보는 사람이 위치를 옮기면 마치 호랑이의 눈동자도 따라 오는 듯하다고 한다. |
기림사 |
기림사(祗林寺)는 경북 경주시 양북면 호암리, 함월산 자락 한적한 곳에 자리하고 있다. 기림사는 신라 초기 인도의 승려 광유성인이 창건하여 임정사(林井寺)라 부르다가, 신라 선덕여왕 12년(643년)에 원효대사에 의해 기림사로 개칭되었다. 조선시대에는 31개 본산 중의 하나로 불국사를 비롯하여 60여 개의 말사를 거느린 큰 사찰이었으나 현재는 불국사의 말사로 있다. 임진왜란 때는 왜병이 지나는 길목에 위치하여 승군의 지휘본부로 사용되기도 했다고 한다. |
기림사는 크지도 작지도 않은 중간 정도 규모의 사찰이다. 그러나 역사가 깊은 만큼 많은 유물을 간직하고 있는 곳이다. 주차장에서 약 3분쯤 걸어 오르면 기림사에서 가장 아름다운 공간인 천왕문 앞이 나오고 이 천왕문을 지나면 범종각과 약수가 나오고, 건너편으로 고풍스런 진남루(鎭南樓) 건물이 보인다. 이름은 누각이지만 규모도 크고 누각처럼 생기지도 않았다. 이 건물이 임진왜란 때 승병의 지휘부로 쓰였던 건물이라 한다. |
진남루를 돌아가면 기림사의 큰 법당인 대적광전이 나온다. 이 대적광전은 보물 제833호로 아주 고풍스런 맞배지붕 건물이다. 대적광전 안에 보물 제958호인 소조 비로자나 삼존불이 안치되어 있고, 오른쪽 옆으로 약사전이 있다. 대적광전 왼쪽 옆으로 가면 관음전과 삼천불전이 나온다. 규모만으로 본다면 이 삼천불전이 기림사에서 가장 큰 건물로 도기로 만든 삼천개의 불상이 안치되어 있다. 삼천불전 건너편으로 박물관이 있는데, 문적, 탱화, 부처님의 진신사리, 와당 등이 전시되어 있다. 그중 가장 유명한 것은 건칠보살좌상으로 현재 보물 제415호로 지정되어 있다. |
이 기림사는 오정수(五井水)라 불리는 약수가 유명하다. 오정수란 다섯 개의 약수를 뜻하는 것으로, 다섯 개의 약수는 다음과 같다. 차를 끓여 마시면 으뜸이라는, 하늘에서 내리는 단 이슬과 같은 물이라는 북암의 감로수(甘露水), 그냥 마셔도 마음이 편안해진다는 후원의 화정수(和靜水), 마시면 기개가 커지고 신체가 웅장해져 장군을 낸다는 3층석탑 옆의 장군수(將軍水), 눈이 맑아진다는 천왕문 앞의 명안수(明眼水), 물빛이 너무 좋아 까마귀가 쪼았다는 천왕문 안의 오탁수(烏啄水)가 오정수이다. |
이중 장군수만 물이 끊기고 나머지 네 곳의 약수가 아직도 나온다고 하는데, 천왕문 안의 오탁수만이 식수대의 형태를 갖추어 놓았고, 나머지는 눈에 잘 띄지는 않는다. |
기림사에서 멀지 않은 곳에 용연폭포(용두연이라고도 함)가 있다. 삼국유사에 따르면 신라의 신문왕이 대왕암에서 용으로부터 옥대와 만파식적을 만들 대나무를 받고 돌아가는 길에 이곳 용연폭포 부근에서 쉬었다고 한다. 그때 태자의 말을 듣고 옥대의 한쪽을 떼어내 시냇물에 넣자 그대로 용이 되어 승천하며, 그곳이 못이 되어 용연이라 불린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입장료는 어른 2500원, 청소년 1500원, 어린이 1300원이며, 주차료가 1500원이다. 기림사 : (054)744-2292 |
찾아 가는 길 - 자가운전 | |
기림사가 있는 경주로 가려면 경부고속도로를 이용해야 한다. 경부고속도로 경주 나들목을 나와 계속 직진. 이 길이 경포산업도로인데, 이 길을 따라 계속 직진하면 보문관광단지 앞에서 감포로 향하는 4번 국도를 만나게 된다. 이 삼거리에서 감포 방향으로 우회전하여 4번 국도를 타고 추령터널을 지나 추령을 넘으면, 14번 국도와 만나는 어일리 삼거리가 나온다. 이 삼거리에서 14번 국도로 좌회전하여 조금만 가면 기림사 주차장을 만난다. |
찾아 가는 길 - 대중교통 | |
경주에서 감포행 버스를 타고 14번 국도와 만나는 어일리 삼거리에서 하차하여, 다시 기림사행 버스를 타야 한다. |
Comment | |
역사가 깊은 절이지만 그리 특징적인 점은 없는 절이다. 경주를 여행할 때 시간이 나면 한 번 들러보는 것도 좋다. |
김룡사 |
경북 문경시 산북면 김룡리, 운달산 자락 태고의 수림 속에 1400여년의 불맥을 이어온 김룡사(金龍寺)가 자리잡고 있다. 이 절은 신라 진평왕 10년(588년)에 운달조사(雲達祖師)가 창건하여 운봉사(雲峯寺)라 불리었으며, 그후 사세를 확장해가다 인조 21년(1643년) 실화(失火)로 모두 소실되어 인조 27년(1649년)에 다시 옛 모습을 되찾았다. 그후에도 많은 전각을 세워 대찰의 면모를 갖추어, 김룡사가 번성을 누리던 때는 소작미만도 2,000석이 넘었고 건물도 1,188평에 48동의 거찰로, 한일합방 후에는 31본산 중의 하나로 45개의 말사를 관장해왔다 한다. 김룡사란 이름은 18세기 이후 조선시대에 붙여진 이름이라 한다. 절의 이름이 김룡사로 바뀌게 된 데에는 전설이 있다. 김씨 성을 가진 사람이 운봉사 입구의 용소 부근에 살고 있었는데, 용소에 살던 용왕의 딸과 결혼하게 되었고 아들을 낳아 이름을 김룡이라 지었다. 그후로 가문의 운수가 대통함에 따라 마을 이름을 김룡이라 불렀고 절 이름도 김룡사로 바꾸었다는 전설이다. |
김룡사에는 4개의 산내 암자와 6개의 암자 유지가 남아 있으나 사찰의 역사에 비해서는 문화재가 별로 없는 편이다. 중요 자료로는 지방 문화재자료인 대웅전이 있고 숙종 29년(1703년)에 조성된 괘불탱화(길이 8.25m, 폭 7.06m), 지옥의 염라왕청에서 죽은 이가 생전에 지은 선악의 행업이 나타난다는 업경대(業鏡臺), 후불탱(後拂幀) 등 120여점의 불교 유물을 소장하고 있다. 지방 문화재자료 제235호인 김룡사 대웅전은 인조(仁祖) 3년(1625)에 중창했다가 인조 21년(1643년)에 소실된 것을 인조 27년(1649년)에 다시 건립하여 오늘에 이른다. 기둥의 둘레가 2m나 되며, 건축 양식상 특이한 것은 기단 위에 초석의 수평을 잡지 않은 상태에서 원주를 세워 각 원주의 높이가 모두 다르고, 기둥 모두가 대웅전의 중심을 향해 약간씩 기울어져 있어 건물 자체에 안정감을 주는 특수 기법을 사용하였다. 대웅전은 정면 3칸, 측면 3칸, 겹처마 팔작지붕 다포계의 건물로 외 3출목, 내 4출목으로 되어 있고, 상부가구는 오량가이다. 그리고 천장은 세 종류의 반자를 이용하여 재치있게 처리하고 있는 등 한국 건축의 조형상 특징을 잘 간직하고 있는 건물이라 한다. 또한 김룡사에는 응향각이 눈길을 끈다. 응향각은 300명을 동시에 수용할 수 있는 넓이 231㎡의 온돌방을 갖추고 있는데, 장판지만도 120장이 쓰인 국내 최대 규모의 방이라고 한다. |
남장사 |
경북 상주시 남장동의 남장사는 상주 최대의 고찰이며 영남의 명승지로 경관이 빼어난 곳이다. 남장사는 725m의 높지도 낮지도 않은 노악산의 품에 들어 앉아 있다. 노악산과 남장사를 향해 출발하면 남장사에 다다르기 전 길 옆에 석장승이 보인다. 얼핏 보아도 이 석장승은 민간신앙의 하나인 남근석을 연상시킨다. 높이는 189cm이며 이중 머리가 조각된 부분이 76cm나 되어 얼굴이 엄청나게 거대하다. 석장승을 지나 오르면 남장사 일주문이 나타난다. 이 일주문의 기둥은 천년 된 칡뿌리라고도 하고 싸리나무라고도 한다. 남장사는 832년(신라 흥덕왕 7년) 창건된 고찰로 귀중한 문화재가 많이 소장되어 있다. 보물 제990호인 비로자나 철불좌상과 이 불상 뒤에 새겨진 보물 제922호인 목각탱이 극락전 뒤편에 있는 보광전에 있다. 또한 남장사 관음선원에는 보물 제923호인 목각탱이 있는데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것이다. < 가는 길 > 서울 → 청주 → 보은 → 상주(3시간 30분 소요) → 남장사(승용차 10분 소요) |
대승사 |
경북 문경시 산북면 전두리의 사불산(四佛山, 912m) 중턱에 자리한 대승사(大乘寺)는 한국 불교사에 많은 고승대덕(高僧大德)을 배출한 찬란한 역사를 가진 사찰로 알려져 있다. 대승사는 신라 진평왕 9년(587년) 망명비구(亡名比丘)에 의해 개산(開山)되었다가 선조 25년(1592년) 임진왜란 때 전소한 뒤 선조 37년(1604년)부터 오랜동안 신축과 중건이 소실했고, 1960년 이루어졌다. 그러나 1956년 화재로 대부분의 건물이 주지 남인기종(南印 基琮)이 중건하였으며, 그후 현재 있는 모든 건물이 연이어 건립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현재 산내 암자는 3개이고 6개의 암자지(庵子址)가 남아 있으며, 문화재로는 대승사 목각탱과 관계문서(木刻幀과 關係文書, 보물 제575호), 대승사 금동보살좌상(金銅菩薩坐像, 보물 제991호) 등의 보물과 지방 유형문화재 1점이 있고 기타 불교 유물 60여점이 있다. |
대전사 |
경북 청송군 주왕산 국립공원 내에 자리한 대전사는 신라 문무왕 12년(672년)에 의상조사가 창건하였으며, 주왕의 아들 대전도군의 이름을 따서 대전사라 불렀다. 대지 4,200평에 건평 330평의 아담한 사찰로 보광전, 명부전, 산령각 등의 건물이 다양한 형태로 배치되어 있다. 이중 보광전은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202호로 고건축학자의 관심을 끌고 있는 건물이기도 하며, 임진왜란 때 명나라 장수 이여송이 사명대사에게 보냈다는 친필 서신이 음각된 목판이 보관되고 있다. |
명봉사 |
경북 예천군 상리면 명봉리의 명봉사는 신라 헌강왕 1년(875년)에 두운선사가 창건한 사찰로 소백산맥의 깊고 고요한 골짜기에 위치하여 주변 경관이 매우 아름답다. 특히 명봉계곡의 울창한 수목과 맑은 물은 이곳을 찾는 이들로 하여금 가히 선경(仙境)에 있는 듯한 아늑함을 느끼게 한다. 이 사찰은 한창 때의 규모가 수백 칸이 되는 매우 큰 절이었다고 하나 지금은 지난 날의 번창한 모습은 볼 수 없고, 아담하고 고즈넉한 사찰이 되어 있다. 경내에는 조선조 "문종대왕태실비"와 고려 최초의 이두문자로 된 공문을 새긴 것으로 "경청선원자적선사능운탑비"가 있어 그 당시 사회상 및 문자 연구의 귀중한 자료로 주목받고 있다. |
보경사 |
경북 포항의 내연산 기슭에 자리한 보경사는 경북3경의 하나로 일컬어지는 빼어난 주위 경관을 지닌 사찰이다. 보경사 12폭포가 저마다 기이한 절벽에서 웅장하게 떨어지고 있으며, 사찰 주위의 울창한 송림 또한 일품이다. |
봉암사 |
경북 문경시 가은읍 원북리, 희양산의 남쪽 기슭에 위치한 봉암사(鳳巖寺)는 신라 헌강왕 5년(879년)에 지증대사(智證大師)가 창건한 고찰로 조계종 제8교구의 말사이다. 창건 이후 지증 국사의 문손(門孫)들이 중수(重修)하여 웅장하고 예술의 극치를 이룬 건물들이 많았다 하나 안타깝게도 소실되었으며, 그후 고려 태조 18년(935년) 정진국사(靜眞國師)가 봉암사에 주석(駐錫)하면서 중창하여 옛 모습을 되찾았고, 몰려드는 많은 선승(禪僧)들을 가르쳤다. 그후에도 몇번의 소실과 중건을 거듭하였으며 1992년 대웅전을 비롯한 모든 전각이 완성되었다. 전성기에는 3,000여명의 수도승이 도를 닦았다는 거찰이며 지금도 많은 승려가 선(禪)에 전념하고 있다. 산내 암자로는 백련암(白蓮庵)이 있으며, 문화재로는 봉암사 정진대사 원오탑(靜眞大師 圓悟塔, 보물 제171호), 봉암사 정진대사 원오탑비(靜眞大師 圓悟塔碑, 보물 제172호), 봉암사 지증대사 적조탑(보물 제137호), 봉암사 지증대사적조탑비(보물 제138호) 등의 보물 5점, 유형문화재 2점, 문화재자료 3점이 잘 보존되어 있다. 이 봉암사는 희양산문(曦陽山門)이라 하며 당시 당(唐)나라에서도 그 수준이 인정되던 선지식(禪知識)의 도량으로 오늘날까지 그 맥을 유지하여온 참선도량이라 한다, 평소에는 일반인의 출입이 통제되고 있으나, 부처님 오신 날에는 출입이 가능하다. |
봉정사 |
봉정사는 경북 안동시 서후면 태장리, 천등산 기슭에 자리잡은 아담한 고찰이다. 주차장에서 산길을 따라 절까지 오르는 길이 아주 아름답고, 절 자체의 느낌도 포근하고 편안한 느낌을 주는 사찰이다. 봉정사까지 오르는 길은 그리 힘들지 않고 또 계곡을 따라 길이 이어져 아주 운치있다. |
중간쯤 계곡가에 명옥대라는 오래된 누각이 하나 들어서 있어 운치를 더 한다. 봉정사는 최근까지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목조 건물로 알려진 극락전 외에는 이렇다 할 유명한 것도 없고 절도 크지 않아 별로 알려지지 않은 사찰이었다. 그러나 몇 년 전 엘리자베스 영국 여왕이 우리나라를 방문했을 때 안동의 하회마을과 이곳 봉정사에 들러 유명한 사찰이 되었다. |
봉정사는 신라 문무왕 12년(672년) 의상대사의 제자였던 능인대덕이 창건했다고 전해지고 있다. 봉정사 창건에 얽힌 설화가 있는데, 의상대사가 부석사에서 종이로 봉황을 접어 날렸는데 그 종이 봉황이 이곳에 내려앉아, 이 자리에 절을 짓고 봉정사라 이름지었다는 이야기이다. 이 봉정사는 최근까지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건물로 알려진 극락전으로 유명했다. 극락전 보수시 발견된 상량문에 의하면 고려 공민왕 12년(1363년)에 중수된 것으로 나타나, 그 이전에 가장 오래된 목조건물로 알려졌던 부석대의 무량수전을 앞질렀다. 그러나 봉정사의 극락전은 최고(最古)의 목조건물 자리를 바로 옆에 있는 대웅전에게 내주게 되었다. 그동안 조선시대 초기 건물로 알려졌던 대웅전에서, 보수를 위해 건물을 해체하던 중 1361년에 만들었다는 묵서가 발견된 것이다. 극락전보다 2년을 앞서는 건물임이 확인된 것이다. |
현재 봉정사에는 극락전(국보 제15호)과 대웅전(보물 제55호), 화엄강당(보물 제448호), 고금당(보물 제449호)과 무량해회, 만세루, 우화루, 요사채 등의 건물이 있고, 영선암, 지조암 등의 부속 암자가 있다. 이중 영선암은 극락전에서 약 200m 정도 떨어져 있는 오래된 암자로 영화 "달마가 동쪽으로 간 까닭은"이 촬영된 곳으로 유명하다. |
찾아 가는 길 - 자가운전 | |
서울에서 안동으로 가려면 중앙고속도로 서제천 나들목을 나와 바로 만나게 되는 38번 국도를 타고 제천, 단양 방향으로 잠깐 가다가 단양 이정표를 보고 5번 국도로 바꾸어 탄다. 이 5번 국도를 계속 따라 단양, 영주를 지나 안동에 갈 수 있다. 안동으로 들어간 뒤에는 예천으로 가는 34번 국도를 타고 예천 방향으로 달리다가 송야천을 건너는 송야교를 지나자마자 오른쪽으로 접어들어야 한다. 이정표가 잘 되어 있어 찾기 어렵지 않다. 경부고속도로 서울 궁내동 톨게이트에서 약 4시간 정도 거리이다. 부산, 대구, 광주 등의 남쪽 지방에서는 중앙고속도로 서안동 나들목을 나서면 된다. |
찾아 가는 길 - 대중교통 | |
안동까지 기차나 버스를 이용해서 간 후, 봉정사로 가는 버스를 타면 된다. |
Comment | |
안동을 여행할 때면 꼭 들러보아야 할 사찰이다. |
부석사 |
경북 영주시 부석면 북지리, 봉황산 기슭에 자리한 부석사(浮石寺)는 여행자들에게 가장 사랑받는 사찰 중의 하나이다. 신라 문무왕 16년(676년) 해동 화엄종을 개종한 의상대사가 왕명으로 창건한, 화엄종의 발원지인 사찰이다. 부석사는 소개하기가 어려울 정도로 다양한 아름다움과 무한한 깊이를 품고 있다. 부석사를 대표하는 것은 대웅전 격인 무량수전과 뒤로 사과나무들을 거느린 은행나무길 그리고 안양루에서 바라보는 전경 등을 꼽을 수 있다. |
주차장에 차를 대고 500m 정도를 걸으면 매표소와 일주문을 지나면서 은행나무길이 펼쳐진다. 우리나라에는 곳곳에 큰 은행나무와 은행나무길이 많이 있지만, 부석사 은행나무길처럼 운치있는 길은 찾기 힘들다. 길의 폭이 은행나무와 잘 어울리는 넓이이고, 적당히 경사진 흙길 그리고 뒤에 무량수전이 기다리고 있다는 기대감 등이 어우러져, 가을이면 이 길이 마치 극락의 진입로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키게 하는 것이다. 사실 부석사의 은행나무들은 그렇게 큰 편도 아니고 중간중간 다른 나무도 섞여 있어 샛노란 은행나무길을 기대한 초행자는 실망을 할 수도 있지만, 그것이 더 아름답게 느껴지는 것이 부석사의 보이지 않는 매력이다. 은행나무 뒤로는 작은 사과 과수원들이 있어 가을이면 사과가 주렁주렁 열린 모습도 볼 수 있다. 은행나무길을 따라 오르다 천왕문 못미쳐 왼쪽으로 부석사중수기념탑과 당간지주가 있는데, 당간지주는 보물 제255호로 지정되어 있다. |
은행나무길의 끝에 천왕문이 있고, 천왕문을 지나면 범종각이 보인다. 부석사 경내의 다른 건물들처럼 너무 크지도 작지도 않고, 있어야 할 제자리에 단아하게 자리한 범종각이다. 범종각으로 곧장 지나기 전에 양쪽의 석탑과 오른쪽의 유물전시관을 보고 가자. 큰 볼거리는 아니지만 숨을 돌리기에 적당한 곳이다. 범종각 밑을 지나면 안양루(安養樓)가 나온다. 안양루 밑의 좁은 돌계단을 올라야 비로서 무량수전에 닿게 되는데, 대가람의 무량수전에 닿는 마지막 길을 이렇듯 좁은 누대 밑을 통하게 했다는 것이 더없이 절묘하다. 안양루를 지나면 국보 제18호인 무량수전(無量壽殿)이다. 무량수전은 부석사의 주불전으로 아미타여래를 모시고 있는데, 찰흙으로 빚은 소조상이며, 앉아 있는 좌상이라 흔히 소조여래좌상이라 불린다. 이 부석사 소조여래좌상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 되고 규모가 큰 소조 불상으로서 높이가 2.78미터, 머리가 0.91미터, 어깨 폭이 2.06미터이며, 현재 국보 제45호로 지정되어 있다. |
무량수전은 얼마 전까지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목조건물로 알려졌는데, 안동 봉정사의 극락전이 더 오래된 목조건물임이 밝혀져 두 번째로 오래된 목조건물이 되었다. 불가의 건물들은 워낙 소실과 중창을 거듭해 건물의 연령을 어떤 기준으로 산정하는지를 정확히 몰라 두 건물이 얼마나 건립연도의 차이가 있는지는 잘 모르지만, 봉정사의 극락전은 규모나 형태면에서는 무량수전을 따르지 못한다. 이 무량수전은 우리나라 팔작지붕의 시원(始原)으로 알려져 있고, 주심포 기둥이 절묘한 배흘림기둥인 것으로도 유명하다. 그러나 그런 내용보다도 무량수전 오른쪽의 삼층석탑(이 석탑도 보물 제249호이다) 옆에서 무량수전을 바라보면 그저 "잘 생겼다"라는 말이 절로 나오는 건물이다. 무량수전 앞에 석등이 하나 있는데, 이 석등도 국보 제17호로 지정된 신라시대의 대표적인 석등이다. |
무량수전을 뒤로 하고 삼층석탑 옆으로 난 길을 따라 5분쯤 오르면 조사당이 나온다. 고려 시대의 건물로 국보 제19호이며, 조사당 안을 보면 삼면으로 벽화가 그려져 있는데, 이 벽화 역시 국보 제46호이다. 그러나 진짜 그림은 떼어내 범종각 아래에 있는 유물전시관에 전시되어 있고, 조사당에 있는 그림은 모사이다. 조사당 건물 앞에 유리와 철망으로 가려진 곳이 있는데, 이 안에 있는 나무가 "선비화"라 불리는 나무이다. 속설에 의하면 부석사를 창건한 의상대사가 지팡이를 꽂아놓은 것이 나무가 되었다 하는데, 이 선비화의 잎을 달여 마시면 아들을 낳는다고 한다. 이런 속설 탓에 사람들이 마구 잎을 따가 유리와 철망으로 막아 놓았는데, 너무 철저히 막아 잘 보이지 않는다. 정식 학명은 선비화가 아니고 골담초라 하는데, 크기는 그리 크지 않다. |
끝으로 부석사의 이름에 얽힌 이야기가 있다. 부석(浮石)이란 이름은 우리말로 "뜬 돌"이란 뜻이다. 돌이 떠 있다라는 말인데, 실제로 무량수전의 왼쪽 뒤로 부석이 있다. 돌이 실제로 떠 있을 수는 없고 아래 돌과 틈이 벌어져 있다. 이 부석에 대해 말하려면 우선 선묘라는 여인의 이야기를 해야 한다. 선묘는 중국 여인으로 의상대사가 중국에 있을 때 의상대사를 몹시 사모했다 한다. 그러다 의상대사가 고국인 신라로 돌아오자 바다에 몸을 던져 죽고 말았다. 그 뒤 의상대사가 부석사 자리에 절을 지을 때, 이 자리를 도적들이 차지하고 있어 애를 태웠는데, 죽은 선묘 아가씨가 돌을 띄우는 영험을 보여 도둑들이 도망가다 이 자리에 부석사를 지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오고 있다. 해서 절의 이름도 부석사가 되었고, 아직도 무량수전 오른쪽 뒤편에 선묘각이 있고, 선묘각 안에 선묘의 초상화가 있으며, 조사당 내에도 선묘의 초상화가 있다. 부석사의 입장료는 어른 1200원, 중고생 800원, 어린이는 550원이며, 주차료가 소형 3000원, 대형 6000원이다. * 부석사 : (054)633-3464 |
찾아 가는 길 - 자가운전 | |
부석사로 가려면 풍기를 거쳐야 한다. 서울에서는 영동고속도로를 타고 문막휴게소를 지나 원주 못미쳐에 있는 만종분기점에서 우회전하여 중앙고속도로로 접어든다. 중앙고속도로에서 현재 마지막 나들목인 서제천나들목을 나와 제천 방향으로 간다. 이 길은 단양으로 가는 5번 국도와 영월로 가는 38번 국도가 겹쳐 있는 구간이다. 제천 시내를 비껴가다가 영월과 단양으로 길이 갈라지는 사거리를 만나면 단양 쪽으로 우회전하여 5번 국도를 탄다(직진하면 영월, 좌회전하면 제천 시내이다). 이후로 계속 5번 국도를 달려 단양을 지나 죽령을 넘으면 바로 풍기다. 새로 뚫린 국도를 버리고 풍기로 들어가서 931번 지방도로(또는 부석사 이정표)를 보고 좌회전하여 30~40분을 달리면 소수서원을 지나 부석사에 닿는다. 풍기부터는 부석사 이정표가 잘 되어 있다. 서울 경부고속도로 궁내동 톨게이트에서 약 3시간 30분~4시간 거리. 부석사 주차장에서 무량수전까지는 약 15분 정도 걷는다. |
찾아 가는 길 - 대중교통 | |
대중교통을 이용해 부석사로 가려면 먼저 시외버스나 기차를 이용해 풍기나 영주로 가야 한다. 시외버스는 서초동 남부버스터미널에서 있고, 기차는 청량리역에서 타면 된다. 풍기나 영주에서 부석사행 버스를 타면 된다. |
Comment | |
부석사는 글로 설명하기에 벅찬 사찰이다. 꼭 시간을 내서 가보기를. 절대 후회하지는 않는다. 사시사철 모두 좋지만 그래도 가을 부석사가 가장 아름답다. 노란 은행잎과 단풍, 그리고 사과가 주렁주렁 열린 모습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부석사는 경사진 터에 자리잡은 사찰이라, 매표소를 지나며부터는 계속 오르막길과 계단을 올라야 한다. 그리 경사도가 심하지는 않다. 부석사에 오를 때는 가능한 한 아주 천천히 걸을 것을 권하고 싶다. 주변을 모두 둘러보며 마음을 편안히 하여 보면 부석사의 정취를 가슴에 담을 수 있기 때문이다. |
불국사 |
경북 경주시 진현동, 토함산(吐含山) 서남쪽 기슭에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사찰이라 할 만한 불국사(佛國寺)가 자리하고 있다. 불국사는 역사적인 가치나 건축물 하나하나의 가치 그리고 불교적인 의미가 너무도 큰 사찰이어서 간단히 설명하기도 어렵고, 그렇다고 범인의 안목으로 자세히 파고들어가기는 더 어려운 사찰이다. 여기서는 많이 알려진 내용만을 다루고, 차후 기회가 닿는 대로 자세한 내용을 소개하기로 한다. |
불국사의 일주문을 지나면 곧 연못을 하나 만나게 된다. 연못의 작은 섬과 연못을 건너는 해탈교가 아름다운 연못으로, 인공연못이지만 자연스러움이 잘 배어나는 연못이다. 1970년 불국사를 복원할 때 만든 연못으로 안압지의 신라 정원에서 모티브를 얻었다고 하는데, 안압지와는 다른 느낌이다. |
연못을 가로지는 무지개모양의 홍예교인 해탈교를 지나면 천왕문을 지나게 되고, 천왕문을 지나면 유명한 청운교, 백운교를 만나게 된다. 이 공간이 다보탑, 석가탑과 함께 가장 유명한 곳으로, 계절에 관계없이 그 아름다움에 절로 감탄을 자아나게 하는 곳이다. 앞에서 바라보면 긴 건물의 맨 오른쪽 끝에 삐죽 튀어나온 좌경루(左經樓)가 있고, 그 옆으로 2단의 계단이 있는데, 이 다리가 백운교(白雲橋)와 청운교(靑雲橋)이다. 2단으로 구분되어 있는 다리에서 아래쪽이 백운교이고 위쪽이 청운교이며, 청운교 위에 자리잡은 문이 자하문(紫霞門)이다. 자하문에서 눈길을 왼쪽으로 돌리면 또 누각이 하나 있는데, 이 누각이 범영루(泛影樓)이다. 범영루의 왼쪽에 규모는 작지만 다시 백운교, 청운교와 비슷한 모양을 한 2단의 다리가 있는데, 이 다리가 연화교와 칠보교이며 칠보교 위의 문이 안양문(安養門)이다. |
자하문과 안양문이 불국사로 들어가는 두 개의 문인 셈인데, 자하문을 지나면 석가탑과 다보탑이 있는 대웅전을 만나게 되고 안양문을 지나면 극락전이 나온다. 백운교, 청운교, 자하문을 지나 대웅전으로 들어가는 것은 석가모니 자비의 세계로 들어가는 의미가 있고, 연화교, 칠보교, 안양문을 지나 극락전으로 들어가는 것은 극락의 세계로 들어가는 의미가 있다고 한다. 물론 이 다리를 직접 걸어 오를 수는 없고 돌아 들어가야 한다. 좌경루 앞 옥로수 옆으로 돌아오르면 옆문을 통해 대웅전으로 들어가게 된다. 특이한 점은 다른 사찰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회랑이 있다는 것이다. 예전 거찰(巨刹)들에는 이런 회랑이 있었던 모양인데, 이런 회랑은 이제 서울의 궁궐 정전에서나 볼 수 있는 것으로 아마 현존하는 사찰 중 회랑이 있는 곳은 불국사가 유일한 사찰이 아닌가 싶다. 그러나 대웅전 마당으로 들어서면 회랑보다는 역시 다보탑과 석가탑이 눈길을 잡는다. 문 앞의 섬세한 조각이 돋보이는 탑이 다보탑이고 뒤쪽의 단 순하면서도 완벽한 느낌의 탑이 석가탑이다. 대웅전 앞에 나란히 서 있는 1300년 전 누군가의 손에 깍이고 다듬어져 만들어졌을 이 두 탑은 규모도 크지만 그 생김생김이 가 히 걸작이어서 범인의 눈으로도 단연 최고임을 직감할 수 있다. |
다보탑과 석가탑 앞으로 대웅전이 있고, 대웅전 뒤로는 강당 건물인 무설전이 있다. 현재는 기념품 판매점 정도로 쓰이고 있고, 그 뒤로 계단을 오르면 관음전과 비로전이 있다. 비로전을 내려오면 극락전을 만나게 된다. 이 극락전이 연화교, 칠보교, 안양문을 지나 만나게 되는 건물로 극락전에 안치되어 있는 금동 아미타여래좌상이 유명하다. 극락전 옆으로는 불교미술관, 범종각이 있고 범종각 옆이 연화교와 칠보교이다. 이렇게 돌면 불국사를 한 바퀴 돌게 되는데, 여기에 소개한 것은 불국사의 표피도 제대로 드러내지 못했음을 밝힌다. |
불국사의 연혁을 간단히 살펴보면, 신라 경덕왕 10년(751년) 재상인 김대성이 창건했고, 혜공왕 때에는 목조건물이 80여동이 있던 거찰이 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임진왜란 때 화재로 소실되었고, 또 일제시대 때 문화재의 참탈이 자행되었다. 그 뒤 1970년경 현재의 형태로 복원되었다. 주요 문화재로는 국보 제20호인 다보탑, 국보 제21호인 석가탑, 국보 제23호인 청운교와 백운교, 국보 제22호인 연화교와 칠보교, 국보 제27호인 금동아미타여래좌상, 국보 제26호인 비로자나불 등이 있다. 또 불국사는 1995년 12월 석굴암과 함께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되었다. |
입장료는 어른 3000원, 중고생 및 어린이 1500원이며, 주차료가 2000원이다. 불국사 : (054)746-9913 |
찾아 가는 길 - 자가운전 | |
불국사로 가려면 경부고속도로를 이용해야 한다. 경부고속도로 경주 나들목을 나와 계속 직진. 이 길이 경포산업도로인데, 오릉 이정표가 있는 삼거리를 지나 바로 35번 국도와 만나는 사거리를 만나게 된다. 여기서도 계속 직전하면 7번 국도를 만나는 사거리를 만나게 된다. 여기서 우회전하여 7번 국도를 달리다가 불국사 삼거리에서 좌회전하면 불국사 관광단지로 들어가게 된다. 불국사로 가려면 관광단지 주차장을 지나 조금만 더 가면 된다. 길 왼쪽으로 불국사 주차장이 있다. 경부고속도로 서울 궁내동 톨게이트에서 경주까지는 약 4시간 30분~5시간 정도 거리이다. 경주나들목에서 불국사까지는 20~30분 거리. |
찾아 가는 길 - 대중교통 | |
경주 고속버스터미널 앞에서 불국사로 가는 시내버스(10번, 11번)가 있다. 시간은 약 30분 정도 소요. |
Comment | |
불국사에 대해서는 뭐라 말을 할 수 없다. 볼 때마다 느낌이 새로운데 어떻게 간단히 느낌을 말할 수 있는가... |
불굴사 |
경북 경산의 불굴사는 신라 신문왕 10년(690년)에 창건하였으며, 흥성기에는 50여동의 와가(瓦家) 12개의 부속암자와 8대의 물방아를 갖춘 대사찰이었다 한다. 이런 대사찰이 영조12년(1736년) 큰 비로 인한 산사태로 대파되어 퇴락하였는데 전라도 송광사 노스님이 현몽(現夢)을 받아 중건하여 현재의 모습을 갖추었다고 한다. 불굴사에는 쪽두리를 쓴 모양의 약사여래입상(藥師如來立像)이 있는데, 관봉여래좌상(속칭 갓바위부처)와 부부부처라는 속설이 전해오기도 한다. 또 신라시대의 것으로 추정되는 3층석탑이 있는데, 1965년 보물 제429호로 지정, 보존하고 있으며 사찰 옆 경내에 원효대사가 수도했다는 석굴은 그후 김유신 장군이 삼국통일의 염원을 기도하여 천신으로부터 깨달음과 지혜를 받았다는 중악석굴이 바로 이 굴이라 전해지기도 한다. 석굴 안에는 신장병에 좋다는 약수터가 있으며 1976년 석굴 내부를 수리하던 중 청동불상 1점이 출토되기도 했다. |
< 교통편 > 열차편 경부선 : 경산역 하차후 시내버스 이용 대구선 : 하양역 하차후 시내버스 이용 승용차 : 경부고속도 경산 IC(진량) 하선-하양-와촌 대중교통 : 시내버스 311(경산 대화교통) 40 ∼ 1시간 간격운행 |
불영사 |
경북 울진군 서면 하원리의 불영사는 신라 진덕여왕 5년(651년) 의상대사가 이곳 산세가 인도의 천축산과 비슷하다 하여 산 이름을 천축산이라 하고, 큰 연못에 있는 아홉 마리의 독용(毒龍)을 주문으로 쫓아낸 후 그 자리에 절을 지어 구룡사라 하였다가, 서쪽 산 위에 부처님의 형상을 한 바위가 절 앞 연못에 비쳐 불영사라 개칭하였다 한다. 조선 태조 6년(1397년)에 소실된 것을 이듬해 소운대사가, 연산군 6년(1500년)에 소실된 것을 양성법사가 중건하였다. 사찰 내에는 보물로 지정된 대웅보전(보물 제1201호), 응진전(보물 제730호), 삼층석탑(도유형문화재 제135호), 영산회상도(보물 제1272호) 등이 있다. |
약사암 |
경북 구미의 금오산 정상의 낭떠러지 아래에 위치하고 있는 약사암(藥師庵)은 신라시대 의상대사에 의해 창건되었다고 전해지며 지리산 석불삼구 중 일구가 법당에 봉안되었다는 전설이 있다. 이 약사암의 겨울 설경은 일품이다. |
오어사 |
오어사(吾魚寺)는 경북 포항시 남구 오천읍 항사리, 운제산 아래 오어저수지 옆에 자리한 아담한 절이다. 절 자체는 규모도 작고, 보물 제1280호로 지정된 동종 이외에는 이렇다할 볼거리도 없다. 그러나 이 오어사는 아름다운 오어지 변에 있어, 운제산 등산로를 따라 조금 올라가서 내려다보면 호수와 어우러진 사찰의 모습이 아주 아름답다. |
오어사는 신라 진평왕 때 창건된 사찰로 처음에는 항사사(恒沙寺)로 불렀으나 뒤에 오어사로 개칭되었다. 이 오어사라는 이름에 얽힌 이야기가 있다. 원효대사와 혜공선사가 함께 이곳에서 수도를 했는데, 그때 두 대사가 법력 시합을 했다고 한다. 개천의 고기를 한 마씩 잡아 산 채로 삼킨 다음 대변을 보아 고기가 살아서 나오게 하는 시합이었다고 한다. 그 결과 한 마리가 살아서 나왔는데, 그 살아 나온 고기가 서로 자기가 삼킨 고기라고 우겼다고 하여 오어사라는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
찾아 가는 길 - 자가운전 | |
포항 시내에서 해변을 따라 경주의 감포로 이어지는 31번 국도를 이용해야 한다. 이 국도를 따라가다가 포항제철 부근에서 오천 이정표를 따라 우회전하여 오천을 지나면 14번 국도를 만나게 된다. 이 국도를 따라 조금만 가면 오른쪽으로 오어사 이정표가 나오고 이 이정표를 따라 들어가면 오어사 앞 주차장에 이르게 된다. |
찾아 가는 길 - 대중교통 | |
고속버스를 이용해 포항까지 간 후 포항에서 오천행 버스를 타고 오천까지 간다. 다음 오천에서 오어사행 버스를 타야 한다. |
Comment | |
호수와 어우러진 풍경이 아주 아름다운 사찰이다. 그러나 사찰의 규모가 작고 볼거리가 없는 것이 흠이다. 포항을 여행할 때 시간이 넉넉하면 찾아볼 만한 곳이다. |
용문사 |
경북 예천군 용문면 내지리, 소백산 남쪽 기슭에 위치한 용문사는 이 고장 출신인 두운선사가 신라 경문왕 10년(870년)에 창건한 사찰이다. 이 용문사에는 고려 태조인 왕건에 얽힌 전설이 있다. 고려 태조가 삼한 통합의 큰 뜻을 품고 두운선사를 방문하고 자동구(洞口)에 이르니, 갑자기 바위 위에서 쌍용이 나타나 절로 가는 길을 인도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태조는 산 이름을 용문산, 절 이름을 용문사라 명명했다고 한다. 고려 명종 1년(1171년)에 태자의 태를 절의 왼쪽 봉우리에 묻고 창기사로 고쳤다가 다시 용문사로 고쳐 오늘에 이르고 있다. |
특히 이 사찰에는 맞배지붕의 균형미를 보여주는 대장전(보물 제145호)을 비롯하여 국내 유일의 회전식 불경보관대인 윤장대(보물 제684호), 왕이 내린 용문사 교지, 대추나무에 불상을 조각한 국내에서 가장 오래된 목불좌상 및 목각탱 등 4점의 보물과 다수의 유물을 간직한 문화 유산의 보고이기도 하다. 용문사는 또한 주변 풍광도 수려하다. 거목이 숲을 이룬 주변 경관도 그윽하며 깨끗하고 소탈한 계곡도 때가 덜 묻은 비경이다. 예천 용문사로 향하는 길 옆에 자리잡은 초간정(草澗亭)은 조선 선조 때의 학자인 권문해(1534~1591년)가 1582년에 세운 정자로 한 번 들러볼 만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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