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여인숙에서
송경동
사랑을 잃고
가을바람에 날리는 거리의 검정 비닐처럼
길을 헤매다
하루 저녁
어느 낯선, 외등 하얀, 오래된 여인숙 명부에
가늘어진 이름 석 자
다소곳이 적어보지 않은 이는 모른다
생수 한 병 요쿠르트 하나 수건 한 장 받아들고 들어가
깨진 벽 유리처럼 구겨진 커튼처럼
녹슨 창살처럼 벽지무늬가 다른 네 벽처럼
우두커니 섰다가, 한순간 무너져
때 탄 이불보로 입막고
흐느껴보지 않은 이는 모른다
씨팔년 더러운 년 나쁜 년 치사한 년 퉤퉤 하며
마지막 자위를 해보지 않은 이는 모른다
삶이 왜 잠깐
들렸다 가는 여인숙처럼 미련 없는 것이어야 하는지를
세상이 왜 아무도 가져갈 것 없이 다만
잠시 쉬었다 가는 여인숙 같은 것이어야 하는지를
왜 또 저 하늘에는 저렇듯 많은 정거장들이 빛나고 있는지를
비루한 여인숙
가끔은 어느 절간이나 성당보다
더 갸륵하고 평온한
내 영혼의 안식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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