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休 心 停<휴심정>/알짜 뉴스, 만평

추석 때 평양시민이 즐겨먹는다는 ‘노치’가 뭔가요?

산마을 풍경 2019. 9. 13. 17:18


북한에서도 추석을 쇨까요?

물론 북쪽 동포들도 추석을 쇱니다. 북쪽에서 가장 권위 있고 ‘인민의 필독신문’인 노동당 중앙위원회 기관지 <노동신문>은 “추석(음력 8월15일)은 우리 나라의 전통적 가을철 민속명절”이라며 “연중의 민속명절 중에서도 큰 명절”이라고 규정합니다.(2018년 9월22일치) 다만 북쪽에선 사흘 연휴인 남쪽과 달리 음력 8월15일 하루만 공휴일입니다.

북쪽에서 처음부터 추석을 ‘민속명절’로 삼지는 않았습니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창건’, 그러니까 분단 정부 수립 직후인 1948년 9월 추석을 봉건잔재로 간주해 ‘규제’(금지가 아닙니다)하기 시작했고, 1967년 5월에는 “봉건 잔재를 뿌리 뽑아야 한다”며 추석을 공식 명절에서 뺐습니다. 그런다고 인민들이 추석을 멀리할까요? 북쪽 당국은 1972년 7·4 공동성명 채택 이후 인민들의 추석 성묘를 다시 허용했고, 서울올림픽이 열린 1988년엔 공휴일(하루)로 복원했습니다. 당시 남쪽 정부의 재일본조선인총연합회(총련) 등 국외 동포를 대상으로 한 ‘추석 성묘 사업’을 의식했다는 얘기도 있습니다. 어쨌거나 북쪽에서 추석이 겪은 고초는, 남쪽에서 ‘음력설’(이른바 ‘구정’)이 겪은 간난신고를 떠올리게 합니다.

남북이 70년을 헤어져 지내고 있지만, 북쪽의 추석 풍습엔 익숙한 풍경이 많습니다. <노동신문>이 지난해 9월24일치 5면에 “우리 인민의 고유한 민속명절-추석”이라는 제목으로 내보낸 기사를 보면, “대대로 내려오는 추석날 첫 의례는 조상의 무덤을 돌아보는 것”입니다. “먼 옛날부터 우리 인민들은 추석날에 햇곡식으로 음식을 만들어가지고 조상의 무덤을 찾는 것을 응당한 도리로, 전통적인 풍습으로 지켜왔다”는 겁니다. “이날 사람들은 명절 옷차림을 하고 조상의 묘를 찾아가 풀베기 등 무덤 손질을 한 다음 제사를 지냈다. 제사가 끝나면 둘러앉아 선조들의 생전에 있었던 일들을 돌이켜보고 음식을 나누어먹으며 화목을 도모하였다”고 합니다. “가을저녁”을 뜻하는 “추석날 저녁에는 달구경을 하는 풍습이 있었다”고도 하고요. 우리네 시골 어른들 모습이 떠오르지요? <노동신문>의 문장이 과거형으로 일관하는 게 눈에 띄는데, 지금도 성묘를 포함한 이런 풍습은 북녘 추석의 중요 구성 요소이라고 합니다.

북녘의 “추석명절에 만드는 독특한 민족음식으로는 햇곡식으로 만든 송편, 시루떡, 찰떡, 밤단자 등”을 꼽을 수 있습니다. 송편은 “추석을 상징할 수 있으리만큼 빠져서는 안 되는 음식”이라고 <노동신문>은 규정합니다. “햇콩, 참깨, 밤, 대추 같은 것을 속으로 넣었다”고 <노동신문>은 전하는데, 북녘 송편은 남쪽의 그것에 비해 2~4배 크답니다. 만두 크기 송편인 셈이지요. ‘밤단자’는 “찹쌀가루를 쪄서 닭알처럼 둥들게 빚고 거기에 꿀에 개인 삶은 밤을 고물로 묻힌 것”이라고 <노동신문>은 설명합니다(2018년 9월22일치).

못한 낯선 이름의 북녘 추석음식으로 “노치”가 있습니다. “추석의 평양지방 특산물”이라는데, “찹쌀가루와 길금가루를 반죽하여 기름에 지진 것”이라고 <노동신문>은 설명합니다. 저는 취재 목적으로 평양에 여러번 가봤는데 ‘노치’라는 지짐음식을 먹어볼 기회가 있었는지 어땠는지 모르겠습니다. 근데 꼭 먹어보고 싶네요.

북녘의 추석 민속놀이도 남쪽과 다를 게 없습니다. “이날 여자들은 그네뛰기, 남자들은 씨름을 하였다. 지방에 따라 바줄당기기, 소놀이, 거부기놀이, 길쌈놀이도 하였다”고 합니다. 그런데 북녘에서 가장 인기 있는 추석 민속놀이는 씨름인 듯합니다. “박사 부교수 임승빈”이라는 전문가는 <노동신문>에 기고한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조선씨름”(2018년 9월23일치 5면)이라는 제목의 글에서 “해마다 민속명절 추석을 맞으며 풍치수려한 (평양) 릉라도에서 씨름경기가 진행된다”고 짚었습니다. 남녘에서도 민속씨름이 폭발적 인기를 끌었던 때가 있지요. 지금은 사실상 예능인이 된 ‘이만기 천하장사’의 기술씨름이 압권이었지요.

북녘의 추석 풍경 가운데 남쪽과 다른 점도 여럿 있습니다. 우선 북녘엔 남쪽과 같은 ‘민족대이동’이 없답니다. 남쪽과 달리 인구 이동이 활발하지 않아 고향을 떠나 사는 이들이 흔하지 않고, 추석이 하루짜리 휴일이라 시간이 빠듯한 사정 등이 두루 작용한 듯합니다.

20005년 추석에  신미리애국열사릉을 찾은 북녘 인민들이 성묘를 하는 모습. 조선중앙통신
20005년 추석에 신미리애국열사릉을 찾은 북녘 인민들이 성묘를 하는 모습. 조선중앙통신


가장 눈에 띄는 차이점은 북녘에선 추석에 인민들이 대성산혁명열사릉·신미리애국열사릉·조국해방전쟁참전렬사묘 등 국립묘지에 참배를 하는 풍습입니다. 김정은 국무위원장 명의의 화환을 추석에 당정군 고위간부들이 각 국립묘지에 바치지요. 대성산혁명열사릉은 항일 빨치산 등이, 신리미애국열사릉은 북한 당국이 인정한 ‘애국자’가, 조국해방전쟁참전열사묘는 한국전쟁 참전자가 묻혀 있습니다. <노동신문>은 이에 대해 “온 나라 인민이 영도자의 두리에 굳게 뭉쳐 하나의 대가정을 이룬 우리 나라에서만 찾아볼 수 있는 또하나의 새로운 풍속이고 전통”(2018년 9월25일치 2면)이라고 자랑합니다. “사회주의대가정”이라는 통치 이데올로기를 끌어온 설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가타부타할 일은 아닌데, 좀 낯설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