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산마을 詩情 산책/내가 사랑하는 詩

초겨울 저녁 / 문정희

산마을 풍경 2018. 6. 8. 12:15

 

초겨울 저녁 / 문정희

 

 

 


나는 이제 늙은 나무를
사랑하게 되었습니다

다 버리고 정갈해진 노인같이
부드럽고 편안한 그늘을 드리우고 앉아

바람이 불어도
좀체 흔들리지 않게 되었습니다.

무성한 꽃들과 이파리들에 휩쓸려 한 계절
온통 머리 풀고 울었던 옛날의 일들

까마득한 추억으로 나이테 속에 감추고
흰 눈이 내리거나

새가 앉거나 이제는
그대로 한 폭의 그림이 되어

저 대지의 노래를 조금씩
가지에다 휘감는

나는 이제 늙은 나무를
사랑하게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