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소리 바람 소리
새소리 바람소리
숲속에서의 아침은 언제나 새소리가 열어 준다. 맑고 가는 휘바람새 소리다. 사실 휘파람새 소리 인지는 정확하지 않다. 어떤 스님이 봄부터 여름 아침에 여린 새소리는 휘바람새라는 글을 읽은 적이 있어 짐작할 뿐이다. 소리가 크지도 않지만 맑아서 멀리까지 울림을 준다.
산막을 지은지도 10년이 넘었다. 젊은 시절부터 나는 산골 생활을 꿈꿔왔다. 서울 생활을 접고 고향에 온지도 꾀 많은 시간이 흘렀다. 내가 이곳에 처음 올 때만 해도 주변은 온통 숲이 빼곡이 들어찬 산이 었다. 하루 종일 있어도 사람 소리는 들을 수 없는 곳이었다. 나와 소통 대상은 새소리와 바람소리 뿐이었다. 한가롭고 다소 적적한 면이 없지 안았다. 그래도 내가 소망하는 가장 이상적인 장소여서 늘 기쁘고 생기 충만한 생활이었다. 숲이 인간에게 베푸는 것은 수도 없이 많지만 특히 내가 소중히 여기는 것은 맑은 숲속에서 새소리와 바람소리를 들으며 사색할 수 있다는 것을 가장 소중한 가치로 여겼다. 아내도 이런 것은 만족했한다.
조용하던 숲에 몇해 전부터 주변에 사람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산막 왼쪽에는 외지인이 땅을 구입하여 집을 지었다. 사람을 볼수 있게 되고 더불어 개짓는 소리가 덤을 따라왔다. 달갑지 안았다. 시도 때도 없이 짓어 대는 개소리가 맑은 산새소리를 마구 몰아 냈다. 그러던 어는날 산막 옆으로 한옥마을이 들어선다는 것이다.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었다. 아니 이 산중에 한옥 마을이라니 가당키나 한 것이인가. 이 산중에 어떻게 건축허가가 나고 도로가 나는 것일까? 이숲은 내가 어릴 때 진달래꽃을 따먹고 찔래를 꺽어 먹으면 놀던 곳이다. 집은 물론 농지로도 전혀 개간할 엄두를 내지 못하던 곳으로 오래전 어릴 적 땔 나무를 할 때 말고는 벌채가 이루어지지 안하서 숲이 소롯이 보전되어 온 곳이다. 3-40년간 잡목하나 풀한포기 베어내지 않아서 숲이 잘 보전 되었던 곳이다. 어느날 갑자 포크레이의 굉음이 울리더니 산을 깍아 내리기 시작했다. 한옥 30여채를 짓는 다는 것이다. 여기에 집을 지을 거라고 단 한번도 생각을 못했다. 그러더니 결국 한옥 4채를 지어서 3채는 입주를 하고 한 채는 주인을 기다리고 있다. 친구들은 땅값이 오르니 좋겠다고 한다. 이런 말을 하는 친구에게 ‘나는 너무 싫은데‘ 라고 했더니 웃는다. 한옥마을엔 대도시에서 살던 분들이 이사를 왔다. 개짓는 소리와 닭우는 소리가 들리고, 한옥 팬션을 운영하는 관계로 주말이면 시끌시끌다. 사람들의 이야기 소리가 다 들린다. 주말에는 산새소리를 듣기가 어려워졌다. 숲속의 고요와 새소리 바람소리가 좋아 온 것인데 아위움이 크다. 또 산막 건너편에는 큰 2층집이 새로 지어졌다.
이제 사방이 집과 사람과 동물들로 북적인다. 내가 원하던 산골 본연의 모습들은 모두 자취를 감추었다. 그래도 도시나 보다는 훨씬 낫다고 스스로 위로하며 산다.
5월의 산바람이 참 좋다. 습기도 없는 건들 바람이 숲을 쓸어 오면 쾌적하다. 내안에 쌓여있던 온갖 노페물이 날아 가는 것만 같다. 이런 호사는 산중에 사는 사람만이 눌릴수 있는 특권이다. 주말에는 새소리와 솔바람 소리를 잃어버렸어도 주중에는 아직 산골 본연의 아름다운 풍경과 자연을 만끽할 수 있지 않은가? 조선시대 지안 스님의 시 중에 이런 시가 있다.
초옥
벽이 무너져 남쪽 북쪽이 다 트이고
추녀 성글어 하늘이 가깝다.
황량하다고 말하지 말게
바람을 맞이하고 달은 번저 본다네
정말 낭만적이고 낙천적인 시다. 또 얼마나 청빈한 삶인가? 스님이라서 일까. 진정한 무욕과 무소유의 삶을 보여 주는 것 같다. 나는 이렇게 비울 수는 없더라도 범사에 감사하며 자연 속에서 살아갈 수 있음을 감사해야 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