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산마을 詩情 산책/시인이 쓰는 산문

겨울 낭만 열차를 타고 오는 딸에게

산마을 풍경 2022. 9. 14. 17:58

겨울 낭만 열차를 타고 오는 딸에게

 

 

 

 

 

요즘 날씨가 계속 봄날처럼 따뜻하더니 오늘 오후부터 댑바람이 불면서 기온이 급격히 내려가고 있구나. 아마 지금쯤 열차를 타고 청량리역에서 제천으로 향하고 있겠지.

중앙선 열차의 차장 밖으로 펼쳐지는 겨울 풍경이 자못 궁금해진다. 내가 청년 시절에 중앙선 열차를 타고 시골에 다닐 적엔 눈덮인 시골 풍경이 너무도 근사했었다. 추수를 끝낸 들판엔 그루터기들이 조금 쓰렁해 보이고 하잔하긴 해도 한가롭고 여유로워 보여서 좋았다. 눈 덮인 치악산 풍경이 아주 장관인데 아직은 눈이 오지 않아서 근사한 설경은 아니어도 넓은 품으로 무언 수행하는 겨울 숲이 공부에 지친 머리를 맑게 행구어 줄 것이다. 내가 대학생 때는 야간 열차를 타고 다녀서 할머니가 걱정을 많이 하셨는데 그래도 나는 고집스럽게 밤 열차를 타고 다녔던 기억이 새롭다. 그 열차 안에서 맥주를 마시며 낭만을 즐기고 청춘의 큰 꿈도 꾸고 그랬었단다.

 

고향은 잘 다녀오는 거니? 사람들은 고향이라고 하면 시골을 연상하지만 도시화가 빠르게 진행되면서 고향이 도시인 사람들이 훨씬 많을 것 같다. 나도 네가 고향이 그립다고 하다니까 조금 낯설다고 할까? 아마도 나도 고향하면 머릿 속에 농촌이나 바다가 보이는 어촌을 생각하고 있었던 것 같다.

 

이제 다시 일할 곳으로 출근을 해야 하는구나. 일할 곳이 있다는 것이 얼마나 큰 위안이고 행복한 일인 줄 너는 아직 잘 모르는 것 같다. 네가 취업이 안돼서 아직까지 책상머리에 앉아있다고 생각해 보렴. 자신감도 잃게 되고 체력도 떨어지고 몸도 아프고 해서 엄청 힘들었을 거다. 무엇보다 심한 스트레스 때문에 너무나 힘겹지 않았을까 싶다. 너에게 말은 안하지만 어머니 아버지도 얼마나 힘들까 생각해 보렴. 너의 면접 시험 발표가 나던날 아빠는 새벽이 잠을 못이루고 일지감치 뒤산으로 갔었다. 차마 전화를 할 수가 없어서 기다리고 기다리다가 6시가 넘어서야 전화를 했었지. 최종 합격했다는 소식을 접하니 눈물이 나더라. 집에 오니 엄마도 눈물을 흘리더라. 너무나 간절하게 소망하였던 바였으니까 얼마나 기쁘던지... 얼마나 좋던지··· 순간 그동안의 긴 기다림으로 인한 스트레스가 다 날라가 버렸단다.

너도 합격자 명단을 수도 없이 확인했다고 하지 않았니? 합격자 명단에 네 이름이 올라있다는 것이 신통하고 신기하고 해서 자꾸만 확인하고 싶었던 것이겠지. 합격의 날을 기다리던 간절한 마음과 합격하고 기뻐하던 네 자신과 엄마를 생각하면서 지금 일할 수 있게 된 것을 정말로 소중하고 가치 있게 여기며 살았으면 좋겠다. 네가 졸업하는 해에 바로 취직을 했다면 지금처럼 소중하게 생각하지 않을 수도 있을 거야. 지금 다소 불만족스럽더라도 합격을 소망하던 그 간절한 마음을 돌이켜보면 좋겠다. 면접에서 떨어져서 눈물 흘리며 참담해 하던 기억을 떠 올려 보렴 그럼 너를 불러준 제천시가 얼마는 고마운 존재인가를 더욱 절실히 깨닫게 될 것이다.

 

신라시대 원효대사께서는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라고 하셨지. 모든 것은 마음이 지어낸다는 것이다. 남이 볼 때 아무리 좋은 직업이라도 내 마음에 차지 않고 만족 스럽지 못하다면 절대로 행복할 수 없고. 남들이 볼 때 아무리 하찮은 직업이라도 내 스스로 만족하고 귀하게 여기면 얼마든지 행복할 수 있을 것이다. “마음 먹기에 달렸다는 것이다.” 네가 경상남도나 전라남도의 지자체로 발령을 받았다면 어땠겠니? 그래도 제천은 서울까지 1시간에 갈 수 있는 KTX가 생겨서 얼마나 좋아. 활기차고 패기 넘치는 새내기 공무원의 모습을 보고 싶구나. 항상 초심을 잃지 말고 긍정적인 마음으로 시민을 위해 정성을 다 하는 멋진 공무원이 되길 소망한다.

2022.1.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