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마을 풍경 2021. 2. 18. 21:26

주막에서

 

 

천상병

 

골목에서 골목으로

거기 조그만 주막집

할머니 한 잔 더 주세요

저녁 어스름은 가난한 시인의 보람인 것을……

흐리멍텅한 눈에 이 세상은 다만

순하디순하게 마련인가,

할머니 한 잔 더 주세요

몽롱하다는 것은 장엄하다

골목 어귀에서 서툰 걸음인양

밤은 깊어가는데,

할머니 등뒤에

고향의 뒷산이 솟고

그 산에는

철도 아닌 한겨울의 눈이 펑펑 쏟아지고 있는 것이다

그 산 너머

쓸쓸한 성황당 꼭대기,

그 꼭대기 위에서

함빡 눈을 맞으며, 아기들이 놀고 있다

아기들은 매우 즐거운 모양이다

한없이 즐거운 모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