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마을 풍경 2020. 11. 8. 12:42

내가 사랑하는 당신은

 

- 도종환

 

 

 

 

저녁 숲에 내리는 황금빛 노을이기보다는/ 구름 사이에 뜬 별이었음 좋겠어

내가 사랑하는 당신은 버드나무 실가지 가볍게 딛으며 오르는 만월이기보다는 /

동짓달 스무날 빈 논길을 쓰다듬는 달빛이었음 싶어./ 꽃분에 가꾼 국화의 우아함보다는 해가 뜨고 지는 일에 고개를 끄덕일 줄 아는 구절초이었음 해. /내 사랑하는 당신이 꽃이라면

꽃피우는 일이 곧 살아가는 일인/콩 꽃 팥꽃이었음 좋겠어./

이 세상의 어느 한 계절 화사히 피었다 시들면 자취 없는 사랑말고 /저무는 들녁일수록 더욱 은은히 아름다운 억새풀처럼 늙어갈 순 없을까 바람 많은 가을 강가에 서로 어깨를 기댄 채 /우리 서로 물이 되어 흐른다면 바위를 깎거나 갯벌 허무는 밀물썰물보다는 /

물오리떼 쉬어가는 저녁 강물이었음 좋겠어/이렇게 손을 잡고 한세상을 흐르는 동안/

갈대가 하늘로 크고 먼 바다에 이르는 강물이었음 좋겠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