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의 강가에서
봄 강가에서
올 겨울은 유난히 포근했다. 눈도 적고 바람이 심하지도 않았다. 늦가을 같은 날씨가 지속 되다 보니 봄도 일찍 찾아 온 모양이다.
봄맞이를 하러 집에서 가까운 팔송강으로 나갔다. 강변길 걷기를 자주 가는 곳이다. 강변길 걷기가 너무 좋다. 넓게 트인 시야와 강물 소리와 새소리, 갈대 흔들이는 소리를 모두 만날 수 있는 곳이다. 살터와 제대로 교감할 수 있는 곳이다. 요즘은 강둑에 길게 늘어선 벚나무가 꽃이 만개해서 무척 화사하다. 벚나무 아래는 갓 피어난 애기똥풀, 조팝꽃, 냉이꽃 같은 야생화들이 숙설거리고 있다. 담숙한 봄바람이 콧등을 친다. 가슴이 활랑거린다. 강이 오랜 겨울잠에 깨어나고 있다. 봄 강은 사계절 중 가장 생동감으로 충만하다. 벚꽃 너른해 환한 길을 사부자기 걷다보면 저절로 편안해지고 행복해진다. 일상생활에서 쌓인 피로가 말끔히 지워진다. 멀리 가지 않고도 가까이에서 벚꽃의 향연을 마음껏 즐길 수 있음에 감사한다. 강변의 버드나무는 어느새 연녹색으로 물이 들어 넌출져 강물에 어룽거린다. 색깔이 너무 곱고 순해서 쓰다듬으며 말을 걸고 싶어진다. 고급스런 연녹색 카펫 위를 걷는 기분이다. 강변 양쪽으로 길이 나있는데 “걷기 좋은 길“이라는 표지판이 눈에 띈다. 벚꽃 길은 약3분의 1정도이고 나머지는 평범한 강변길이다. 강변길은 민틋하지만은 않다. 잔자갈과 잡풀과 잔디가 섞여 있는 배질배질한 비포장도로도 있다. 비포장도로를 걸으면 더욱 걷는 맛이 새롭게 다가온다. 콘크리트를 벗어나서 흙과 교감하며 걸으면 무언가 더 진실해 지는 느낌이 든다.
내가 종종 찾는 강의 강물은 사품이 거의 없고 유속이 느린 편이다. 천천히 흐르는 강물을 보며 빠르게 만을 외치는 현대사회에서 받는 심리적 부담과 압박을 조금이나마 덜어 낼 수 있어서 좋다. 나는 요즘 보름 정도 매일 강둑길을 걸었다. 한 시간 내지 한 시간 반 정도 걸린다. 강물 소리를 들으면 아슴한 옛일도 그리움으로 다가오고, 지난 시간의 일들을 추억하며 또 나 자신을 성찰해 보기도 한다. 수량이 적어서인지 여름 강물 보다 더 사뜻해 보인다. 강물 소리는 작으면서도 더욱 가슴 깊숙이 와 닿는 것 같다. 흘러가는 강물을 보는 마음은 언제나 편안하고 능준하다. 과거 아프고 안타까웠던 기억도 다 지울 수 있다. 아름다운 추억은 더욱 빛나고 진정성 있게 다가온다. 강변 반대쪽으론 논이 널려있고 조그만 강마을이 있다. 10여 채 되는 강마을은 단정하고 사늑한 느낌이다. 논 뒤로는 야산들이 병풍처럼 펼쳐져 있다. 강길을 걸으면서 내 속에 내재되어 있는 검은 욕망의 찌꺼기들은 강물에 버린다. 강물은 유구하다. 묵묵히 제갈 길을 충실히 가는 강에서 진실함과 성실함을 배운다. 강물은 말이 없지만 나에게 말해주는 것이 참 많다. 홀로 흐르지 않고 솔골짝에서 내려오는 작은 물길도 다 보듬어 함께 흐른다. 낮은 곳으로 흐르면서 더 속 깊어 지는 강물을 보면 나도 더욱 낮게, 겸손하게 강물을 따라 흐르고 싶어진다. 강은 내게 유유히(幽幽) 다가온다. 강은 사철 듬쑥하고 슬겁다. 무심한 듯 보이는 강물을 보고 있으면 어느새 마음이 그윽해지고 한가해진다. 마음에 걸림이 없어진다. 강변길은 매일 걸어도 싫증나지 않는다. 매번 새롭고 다른 느낌을 다가온다. 강은 수많은 생명의 근원이기도 하다. 오늘은 강물 위에 청둥오리들이 많이 보인다. 강이 청둥오리들을 푸근하게 품어 주는 것이다. 자유자재로 마음껏 활보하며 자맥질 하는 모습은 평화롭기 그망없다. 강은 한없이 넓은 아량과 넉넉한 심성을 가졌나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