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마을 풍경 2019. 12. 7. 00:06

 

들국화 예찬

 

 

 

 

 

나는 들국화를 들국이라고 부른다. 더 다정다감하게 들리기 때문이다.

들국화는 강인한 생명력을 자랑하는 여러해살이 풀이다. 겨울이 되면 잎과 줄기는 말라 죽고 뿌리만 살아남았다가 이듬해 봄이 되면 다시 자라서 꽃을 피운다. 우리나라 가을을 대표하는 야생화로 향기가 아주 그윽하고 소박하다. 지난하던 여름 더위가 물러가고 바람이 선선해지고 푸르기만 하던 나뭇잎이 시나브로 붉게 물들기 시작하면 산야 곳곳에는 들국화가 다투어 꽃을 피우기 시작한다. 노란 꽃이 무리 지어 소담스럽게 피지만 어떤 곳에서는 한가롭게 몇 송이만이 피어 있는 경우도 있다. 또 어떤 곳은 아주 노랗게 들불처럼 번진다. 들국은 요란스럽지 않고 정갈하고 질박하다. 치장을 하지 않고 화려하지 않아서 좋다. 향기가 제법 강하기는 하지만 싫지 않고 은은하게 멀리까지 퍼지며 은근히 사람의 마음을 끌어당기는 마력이 있다. 지난여름의 혹서와 비바람을 견뎌내고 고운 꽃 을 피웠기에 더욱 아름다운지도 모른다.

들국화는 야국이라고도 하는데, 꽃 모양이 비슷한 여러 종류가 있다. 감국, 산국, 구절초, 개미취 등이다. 구별하기가 쉽지 않다. 산국은 식용하거나 약용한다. 산국 꽃을 쪄서 말리면 훌륭한 차()가된다. 마른 꽃에 따뜻한 물을 부어 우려내어 차로 마시면 그 향기가 그윽하기가 이를 데 없다. 또 술을 담그기도 한다. 몇 해 전에는 감국 꽃을 따서 술을 담갔는데 향기가 온통 집안과 가슴을 다 적신 기억이 있다. 우리 조상들은 옛날부터 들국꽃을 베게에 넣어 쓰기도 하였다. 향이 좋을 뿐더러 숙면에 도움을 큰 준다고 한다.

 

들국화를 보면 오래 전에 돌아가신 어머니가 생각난다. 어머니는 다른 친구들의 어머니들 보다 유달리 꽃을 좋아하셨다. 산골에서 만나는 풀꽃들에 대한 관심이 많으셨다. 들꽃들을 보면 그냥 지나치지 않으시고 꼭 말을 걸었다. 봄이면 진달래나 조팝꽃을 꺾어 주셨다. 들길을 가다가 만나기 쉬운 꽃이다. 진달래는 향기는 적지만 우리나라 봄을 대표할 만큼 국민들의 사랑을 받는 꽃이다. 조팝나무는 관목으로 싸리나무를 닮았다. 하얗게 무더기로 피는데 무척 밝고 화사하다. 향기는 별로 없는 편이다. 밭에 가서 들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 올 때 산모퉁이나 밭둑에 흔히 만나게 되는 들국을 보시면 꼭 한 아름 꺾어서 내게 안겨주셨다. 나는 그 들국 향기에 흠뻑 취해서 행복해 했었다. 지금은 공원이나 아파트의 정원에서도 진달래나 들국화를 볼 수도 있지만 시골 산자락이나 들길에서 만나는 그 것들과는 그 느낌이 아주 많이 다르다. 어머니가 건네주시던 그 들국처럼 맑고 밍근한 향기가 오래가는 그래서 오랫동안 사람의 마음을 포근하게 안아주는 그런 사람이고 싶다. 하늘은 높고 맑은 가을날 들국 향기가 은은하게 번져가는 한적한 시골길을 걷노라면 저절로 행복해진다. 마음이 넉넉해지고 그윽해진다. 마음에 걸림이 없다. 떠나버린 시간들이 옹달샘물처럼 그리워진다. 나만이 호사를 누리는 것 같아서 조금은 미안하지만 내겐 너무나 소중한 추억이다. 들길을 걸으며 떠난 시간들을 추억하는 것도 나에겐 큰 행복이다. 어머니가 나에게 물려주신 크고 아름다운 유산이다. 감사하다. 들국화는 수수하고 순박한 시골 아낙 같아서 정말 정겹고 좋다. 가장 한국적인 꽃이 아닐까 싶다. 벌써 가을이 저만치 가고 있다. 들국화를 보려면 다시 1년을 기다려야 한다. 즐거운 기다림이 시작된 것이다.

 

 

(2019.11.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