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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한국의 서원’ 유네스코 세계유산 목록 올랐다

산마을 풍경 2019. 7. 24. 17:16
한국의 14번째 세계유산 확정
6일 세계유산위원회서 최종결정
이번에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된 서원중 건립연대가 가장 이른 경북 영주 소수서원. 1543년 조선 최초의 서원으로 세워졌다.
이번에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된 서원중 건립연대가 가장 이른 경북 영주 소수서원. 1543년 조선 최초의 서원으로 세워졌다.
조선시대 나라 안 각지에 세워진 유교 교육기관인 ‘한국의 서원(Seowon, Korean Neo-Confucian Academies)’이 한국의 14번째 유네스코 세계유산이 됐다.

문화재청은 지난달 30일부터 아제르바이잔 수도 바쿠에서 43차 회의를 열고있는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가 6일 밤(현지 시각)등재유산 심의를 진행한 결과 우리 정부가 지난해 신청한 ‘한국의 서원’ 9개소를 세계유산목록에 올리기로 결정했다고 이날 발표했다. 이번 등재결정으로 한국은 1995년 경북 경주의 석굴암·불국사와 경남 합천의 해인사 장경판전, 서울 종묘가 처음 유네스코 세계유산 목록에 오른 이래 24년만에 14번째 세계유산을 갖게됐다. 아울러 지난해 7월 등재된 ‘산사, 한국의 산지승원’에 이어 2년 연속으로 세계유산을 목록에 올렸다.

6일 오후 (현지시각) 아제르바이잔 바쿠에서 열린 제43차 세계유산위원회에서 “한국의 서원”이 세계유산으로 등재되자 정재숙 문화재청장(앞줄 왼쪽)과 이병현 주유네스코대한민국대표부 대사(앞줄 오른쪽)을 비롯한 관계자들이 기뻐하고 있다.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는 6일 오후 아제르바이잔 바쿠에서 열린 제43차 세계유산위원회에서 “한국의 서원”을 세계유산목록에 등재하기로 최종결정했다. 이로써 우리나라는 14개소의 세계유산을 보유하게 됐다. [문화재청 제공]
6일 오후 (현지시각) 아제르바이잔 바쿠에서 열린 제43차 세계유산위원회에서 “한국의 서원”이 세계유산으로 등재되자 정재숙 문화재청장(앞줄 왼쪽)과 이병현 주유네스코대한민국대표부 대사(앞줄 오른쪽)을 비롯한 관계자들이 기뻐하고 있다.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는 6일 오후 아제르바이잔 바쿠에서 열린 제43차 세계유산위원회에서 “한국의 서원”을 세계유산목록에 등재하기로 최종결정했다. 이로써 우리나라는 14개소의 세계유산을 보유하게 됐다. [문화재청 제공]

‘한국의 서원’은 경북의 영주 소수서원, 안동 도산·병산서원, 경주 옥산서원과 대구의 달성 도동서원, 경남의 함양 남계서원, 전남의 장성 필암서원, 전북의 정읍 무성서원, 충남의 논산 돈암서원으로 이뤄진 연속유산이며, 모두 국가사적이다. 세계유산위는 “오늘날까지 한국에서 교육과 사회적 관습 형태로 지속되어온 성리학과 관련된 문화적 전통의 증거”라면서 “성리학 개념이 여건에 맞게 바뀌는 역사적 과정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탁월한 보편적 가치’(OUV:Outstanding Universal Value)가 인정된다”고 등재배경을 설명했다.

6일 오후 (현지시각) 아제르바이잔 바쿠에서 열린 제43차 세계유산위원회에서 “한국의 서원”이 세계유산으로 등재되자 서원 유사들과 관계자들이 기뻐하고 있다.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는 6일 오후 아제르바이잔 바쿠에서 열린 제43차 세계유산위원회에서 “한국의 서원”을 세계유산목록에 등재하기로 최종결정했다. 이로써 우리나라는 14개소의 세계유산을 보유하게 됐다. [문화재청 제공]
6일 오후 (현지시각) 아제르바이잔 바쿠에서 열린 제43차 세계유산위원회에서 “한국의 서원”이 세계유산으로 등재되자 서원 유사들과 관계자들이 기뻐하고 있다.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는 6일 오후 아제르바이잔 바쿠에서 열린 제43차 세계유산위원회에서 “한국의 서원”을 세계유산목록에 등재하기로 최종결정했다. 이로써 우리나라는 14개소의 세계유산을 보유하게 됐다. [문화재청 제공]

‘한국의 서원’은 2011년 세계유산 잠정목록에 등재된 뒤 한차례 신청을 철회한 끝에 재신청을 하는 곡절을 겪었다. 정부는 2015년 1월 처음 등재신청서를 냈으나, 이듬해 세계유산 등재를 심사하는 유네스코 자문기구인 국제기념물유적협의회(이코모스·ICOMOS)가 ‘반려’의견을 내면서 그해 4월 등재 신청을 거둬들여야 했다. 이코모스쪽은 당시 반려의견을 내면서 병산서원 등의 서원 주변 경관이 등재신청서의 유산 영역에서 빠진 점을 지적하고 왜 9곳의 서원만 등재하려는지 명확한 근거를 요구했다.

문화재청과 외교부는 그뒤 전문가들 의견을 모아 비슷한 국내외 유산들과 비교 연구를 통해 내용을 보완했다. 9개 서원이 16~17세기 세워진 국내 서원의 시작점이자 기준이 될만한 연속 유산의 성격임을 강조한 신청서를 지난해 1월 다시 제출했다. 이에 이코모스는 1년 이상의 조사를 거쳐 지난 5월 ‘등재 권고’ 의견을 내면서 청신호가 켜졌고, 이번 세계유산위 회의의 결정으로 8년여에 걸친 등재 추진 작업은 결실을 맺으며 마무리됐다. 문화재청 쪽은 “세계유산위원회가 등재 이후 9개 서원에 대한 통합 보존 관리방안을 마련할 것을 권고했다”면서 권고사항 이행을 위해 관련 지자체 등과 계속 협의하겠다고 밝혔다.

세계유산 목록에 오른 도산서원. 내부 마당에서 선대 유학자들에게 제례를 올리고 있는 모습이다.
세계유산 목록에 오른 도산서원. 내부 마당에서 선대 유학자들에게 제례를 올리고 있는 모습이다.
서원은 16세기 중반부터 17세기까지 지방 지식인들이 조선왕조의 지배이념인 성리학을 비롯한 유학을 가르치기 위해 세운 교육기관이다. 성리학적 지식인을 키웠으며, 지역의 주요 유학자들을 제사를 지내어 기리면서 지역 학파를 형성했으며, 지역 사회의 공론을 모으고 향촌 사람들을 교화하는 구실도 했다.

특히 이번에 등재된 서원 9개소는 조선 성리학 교육기관의 전형으로서 서원의 특징과 가치를 잘 보존해왔다. 건립연대를 보면, 1543년 조선 최초의 서원으로 건립된 영주 소수서원을 필두로, 남계서원(1552년 건립), 옥산서원(1573년 건립), 도산서원(1574년 건립), 필암서원(1590년 건립), 도동서원(1605년 건립), 병산서원(1613년 건립), 무성서원(1615년 건립), 돈암서원(1634년 건립)의 차례로 이어지는데, 16세기 초반부터 17세기 초반까지의 서원들이다.

전북 지역의 대표적인 조선시대 서원인 무성서원의 경내 모습.
전북 지역의 대표적인 조선시대 서원인 무성서원의 경내 모습.
소수서원은 이땅에 가장 먼저 세워진 서원이다. 학문을 닦고 연구하는 강학과 지역의 큰 학자를 기리는 제향(제사)과 관련된 규정을 처음 정립해 후대의 서원에 큰 영향을 미쳤다. 뒤이어 조선에 두 번째로 건립된 남계서원은 지역의 사림들이 단독으로 세운 첫 서원 유산이면서, 한국 서원 건축의 정형적인 축선과 배치방식이 처음 등장한 전범이 된다. 서원에 처음 누마루를 놓아 그뒤 일반적 양식으로 유행시킨 옥산서원, 학문과 학파의 중심기구로 서원을 자리매김시킨 도산서원, 선비사림 활동의 중심지였던 병산서원, 성리학의 실천 이론인 예학을 완성한 거점으로 평가되는 돈암서원 등도 역사적 의미가 큰 서원유산으로 꼽히고 있다. 글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사진 문화재청 제공



 대원군의 서원철폐 당시 보존서원


1871년(고종 8년) 음력 3월 20일 서원철폐령으로 47개의 서원을 제외한 수백여 개의 서원이 훼철되었다. 이 서원철폐령을 취소해 달라는 전국 유림들의 집단 상경집회가 있었으나, 이때마다 대원군은 유림들의 집회를 강제 진압하고, 유림들을 노량진 밖으로 축출하여, 유학자들의 반발을 초래하였습니다. 서원 철폐령에도 불구하고 존치된 서원은 다음과 같습니다.

도학서원

서원명 당시 소재지 현주소 건립년 사액년 모신 사람
(또는 사주(祀主))
비고
서악서원(西嶽書院) 경상도 경주 경상북도 경주시 서악동 1561년 1623년 홍유후 설총(弘儒候 薛聰) 처음에는 김유신을 모시다가, 뒤에 설총과 최치원
무성서원(武城書院) 전라도 태인(泰仁) 전라북도 정읍시 칠보면 무성리 1484년 (태산사) 1696년 문창후 최치원(文昌侯 崔致遠)
소수서원(紹修書院) 경상도 순흥 경상북도 영주시 순흥면 1543년 1550년 문성공 안향(文成公 安珦)
숭양서원(崇陽書院) 경기도 개성 황해북도 개성특급시 선죽동 1573년 1575년 문충공 정몽주(文忠公 鄭夢周) 정몽주가 살던 집터에 지어졌다.
도동서원(道東書院) 경상도 현풍(玄風) 대구광역시 달성군 구지면 도동리 1605년 1607년 문경공 김굉필(文敬公 金宏弼)
남계서원(藍溪書院) 경상도 함양 경상남도 함양군 수동면 1552년 1566년 문헌공 정여창(文獻公 鄭汝昌)
심곡서원(深谷書院) 경기도 용인 경기도 용인시 수지구 상현동 1650년 1650년 문정공 조광조(文正公 趙光祖)
옥산서원(玉山書院) 경상도 경주 경상북도 경주시 안강읍 옥산리 1573년 1574년 문원공 이언적(文元公 李彦迪)
필암서원(筆巖書院) 전라도 장성 전라남도 장성군 황룡면 필암리 1590년 1662년 문정공 김인후(文正公 金麟厚)
도산서원(陶山書院) 경상도 예안(禮安) 경상북도 안동시 도산면 퇴계리 1574년 1575년 문순공 이황(文純公 李滉)
문회서원(文會書院) 황해도 배천(白川) 황해남도 배천군 조선 중기 1568년 문성공 이이(文成公 李珥)
파산서원(坡山書院) 경기도 파주 경기도 파주시 파평면 1568년 1650년 문간공 성혼(文簡公 成渾)
돈암서원(遯巖書院) 충청도 연산 충청남도 논산시 연산면 1634년 1660년 문원공 김장생(文元公 金長生)
여주 강한사(江漢祠) 경기도 여주 경기도 여주군 여주읍 1785년 1785년 (대로사) 문정공 송시열(文正公 宋時烈) 원래 이름은 대로사
흥암서원(興巖書院) 경상도 상주 경상북도 상주시 연원동 1702년 1705년 문정공 송준길(文正公 宋浚吉)
봉양서원(鳳陽書院) 황해도 장연 황해남도 장연군 1695년 1696년 문순공 박세채(文純公 朴世采)

충렬서원 및 사우

서원명 당시 소재지 현주소 건립년 사액년 모신 사람
(또는 사주(祀主))
비고
강화 충렬사(忠烈祠) 경기도강화 인천광역시 강화군선원면 1642년(현렬사) 1658년 (충렬사) 문충공 김상용(文忠公 金尙容) 현렬사(顯烈祠)로 부르다가 1658년
광주 현절사(顯節祠) 경기도광주 경기도 광주시 중부면 1688년 1693년 삼학사 및 문정공 김상헌(文正公 金尙憲) 윤집·오달제·홍익한
우저서원(牛渚書院) 경기도김포 경기도 김포시 감정동 1648년 1675년 문렬공 조헌(文烈公 趙憲)
용연서원(龍淵書院) 경기도포천 경기도 포천시 신북면 1691년 1692년 문익공 이덕형(文翼公 李德馨)
사충서원(四忠書院) 경기도과천 경기도 하남시 상산곡동 1725년 1725년 신임옥사 4충신 김창집·이이명·이건명·조태채
1968년
덕봉서원(德峰書院) 경기도양성(陽城) 경기도 안성시 양성면 덕봉리 1695년 1695년 충정공 오두인(忠貞公 吳斗寅)
노강서원(鷺江書院) 경기도과천[5][6] 경기도 의정부시 장암동 1695년 1697년1791년 문렬공 박태보(文烈公 朴泰輔) 박태보가 죽은 노량진에 충렬사(忠烈祠)로 창건되어 사액을 받은 뒤, 노강서원으로 승격된 해에 다시 사액을 받았다.

1969년

고양 기공사(紀功祠) 경기도고양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 행주산성 내 1841년 1841년 충장공 권율(忠莊公 權慄) 나중에 이름이 충장사
홍산 창렬사(彰烈祠) 충청도홍산(鴻山) 충청남도 부여군 구룡면 1717년 1721년 문정공 윤집(文貞公 尹集)을 비롯한 삼학사 창렬서원
청주 표충사(表忠祠) 충청도청주 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수동 1731년 1736년 충민공 이봉상(忠愍公 李鳳祥) 남연년(南延年)과 홍림[7]
노강서원(魯岡書院) 충청도노성(魯城) 충청남도 논산시 광석면 1675년 1682년 문정공 윤황(文貞公 尹煌)
충주 충렬사(忠烈祠) 충청도충주 충청북도 충주시 단월동 1679년 1727년 충민공 임경업(忠愍公 林慶業)
광주 포충사(褒忠祠) 전라도광주 광주광역시 남구 원산동 1601년 1603년 충렬공 고경명(忠烈公 高敬命) 고경명의 아들 고종후(高從厚)·고인후(高因厚)와 유팽로(柳彭老)·안영(安瑛)을 함께 배향한다.
금오서원(金烏書院) 경상도선산(善山) 경상북도 구미시 선산읍 1570년 1575년 충절공 길재(忠節公 吉再)
옥동서원(玉洞書院) 경상도상주 경상북도 상주시 모동면 1518년 1789년 익성공 황희(翼成公 黃喜) 그밖에 황맹헌(黃孟獻), 황효헌(黃孝獻), 황뉴(黃紐)를 배향하고 있다.
병산서원(屛山書院) 경상도안동 경상북도 안동시 풍천면 병산리 1614년 1863년 문충공 류성룡(文忠公 柳成龍) 고려 말기 풍산현에 세운 풍악서당(豊岳書堂)을 1572년 류성룡이 현재 위치로 옮겼고, 1614년
동래 충렬사(忠烈祠) 경상도동래 부산광역시 동래구안락동 1605년 1624년 충렬공 송상현(忠烈公 宋象賢) 안락서원
진주 창렬사(彰烈祠) 경상도진주 경상남도 진주시 진주성 내 1595년 1607년 문렬공 김천일(文烈公 金千鎰) 외 38인 1868년(고종 5년)부터 김시민
고성 충렬사(忠烈祠) 경상도고성 경상남도 통영시 명정동 1606년 1663년 충무공 이순신(忠武公 李舜臣)
거창 포충사(褒忠祠) 경상도거창 경상남도 거창군 웅양면 1737년 1768년 충강공 이술원(忠剛公 李述原)
창절서원(彰節書院) 강원도영월 강원도 영월군 영월읍 영흥리 1685년 1699년 사육신 6인 외 3인 배향 생육신
철원 포충사(褒忠祠) 강원도철원 강원도 철원군 철원읍 1665년 1668년 충무공 김응하(忠武公 金應河)
충렬서원(忠烈書院) 강원도김화 강원도 철원군 김화읍 1650년(충렬사) 1652년 (의열사) 충렬공 홍명구(忠烈公 洪命耉) 충렬사(忠烈祠)·의열사(義烈祠)라고도 부르며, 한국전쟁 때 불타 없어졌다. 현재 철원 충렬사지
평산 태사사(太師祠) 황해도평산 황해북도 평산군 산성리 태백산성 내 고려 초기 1796년 (삼태사사) 신숭겸유검필복지겸,배현경 한국전쟁
해주 청성묘(淸聖廟) 황해도해주 황해남도 해주시 1687년 1701년 백이숙제(伯夷叔齊) 원래 이름은 이제묘(夷齊廟)이며, 청성사
노덕서원(老德書院) 함경도북청 함경남도 북청군 북청읍 1627년 1687년 문충공 이항복(文忠公 李恒福)
영유 삼충사(三忠祠) 평안도영유(永柔) 평안남도 평원군 1603년(와룡사) 1661년 (와룡사),1750년 (삼충사) 제갈량·악비(岳飛)·문천상(文天祥)
안주 충민사(忠愍祠) 평안도안주 평안남도 안주군 안주면 1681년 1682년 충장공 남이흥(忠蔣公 南以興)
영변 수충사(酬忠祠) 평안도영변 평안북도 향산군 향암리 1794년 1794년 청허 휴정·송운 유정 승려
평양 무열사(武烈祠) 평안도평양 평양직할시 1593년 1593년 명나라 병부상서(兵部尙書) 석성(石星) 명나라 장수 이여송·양원(楊元)·이여백(李如栢)·장세작
정주 표절사(表節祠) 평안도정주 평안북도 정주시 조선 순조 1824년 충렬공 정시(忠烈公 鄭蓍)를 비롯한 7의사 홍경래의 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