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억 -- 그돈 내사랑 시한줄만도 못해
서울 삼청동에서 북악스카이웨로 올라가는 길에서 삼청터널을
막 넘어가면 북악산 끝자락 성북동 기슭에 삼청각 청운각과
더불어 한시대를 풍미했던 최고급 요정 대원각이 자리하고 있었다.
지금은 길상사라는 사찰로 웅장함을 자랑하고 있지만 이곳은 많은 사연이
깃든 터전으로 온세상에 알려진곳이다.
대원각의 주인 김영한은 1915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가난한 탓에 15살에 약한 신랑에게 팔려가듯 결혼을 했지만
얼마안되어 신랑이 우물에 빠져 죽는 불운을 맞는다.
시어머니의 고진 시집살이 끝에 눈물을 머금고 집을나온 그녀는
기생의 길을 갈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가무와 궁중무에 두각을 나타냈고 삼천리 문학에 수필을 발표할
정도로 시와 글 그림에 재능이 뛰어난 미모의 기생이었다.
23살에 영어교사로 근무하던 백석과 운명적으로 만난다.
둘의 사랑은 날로 무르익지만 백석의 부모는 기생과 동거하는 아들을
못마땅하게 생각하고 강제로 다른여자와 혼인을 시켰으나 첫날밤부터
도망치기를 여러번..부모에 대한 효심과 여인에 대한 사랑사이에서 백석
은 괴로워하다 만주로 떠나고자 제의를 했으나 김영한은 백석의 미래를
걱정 함께 가지않았다고 한다.
훗날 김영한은 그때 함께 못간것에 대해 후회하며 살았다고한다.
요정 대원각의 주인 김영한 할머니는 몇해전에 입적하신 법정스님께
대원각을 시주하려는 뜻을 밝혔다. 천억원대 재산을 시주하겠다는
할머니, 무소유를 말씀하시며 받지 않겠다는 법정스님 결국 대원각은
대한불교 조계종 송광사 분원으로 등록하여 송광사 옛이름인 길상사를
인용해서 현재 길상사가 되었다.
이날 김영한 할머니에게 길상화 법명을 주고 108염주를 목에 걸어 주었다.
할머니, 천억대 재산을 시주하는데 아깝지 않으세요? 기자의 질문
(1000억원 그돈 내사랑 백석의 시한줄만도 못해) 하는말을 남겨 돈보다
사랑이 더 중요하다는 명언을 남겼다.
그후 길상화는 길상사 경내를 산책하면서 ^^나죽으면 화장해 눈이
많이 내리던날 길상사내에 뿌려주세요^^라고 유언을 하고 이틀후인
99년 11월 14일 108염주한벌을 목에 건채 세상을 떠났다.
흰눈이 많이 내리던날 그녀의 유언대로 길상사 경내에 스님이
유골을 뿌렸다. 김영한 1999년 당시 그의 나이 84세였다.
가을비 내리는 길상사
길상사의 겨울
길상사 경내에는 여름이면 상사화가 흐드러지게 핀다고 한다.
한여인이 스님을 사랑해 매일 그리워 하였지만 결코 만날수없는
인연 안타까운 마음으로 절앞마당에 꽃을 심었는데 이꽃은
잎이 진다음에 꽃이피고 꽃이진다음에 잎이나니 꽃과잎은 영원히
만날수 없는 인연이라고 이여인의 운명과 흡사하여 이꽃은 오늘날
세인들은 상사화라고 불렀다는 전설도 전해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