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마을 풍경 2019. 1. 4. 13:14

겨울 허수아비   /엄기창

 

 

빈 들에

 

바람의 살 내음이 가득하다

 

하루의 일 다 마치고 황혼을 바라보는

 

아버지 야윈 뒷모습 같은 허수아비.

 

나는 저녘 들풀들의 신음마저

 

사랑한다.

 

박제로 남아있는 풀벌레소리들의

 

침묵도 사랑한다.

 

황금빛 가을에 이루어야 할 삶의 과제들

 

모두 마치고

 

부스러져야 할 땐 부스러지는

 

저 당당한 퇴임

 

눈부신 정적의 틈을 비집고 들어온

 

먼 산사 범종소리 들을 채우면.

 

수만개의 번뇌처럼 반짝이는 눈발

 

눈발 속으로 꺼지듯 지워지는 허수아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