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산마을 詩情 산책/내가 사랑하는 詩
겨울 허수아비/엄기창
산마을 풍경
2019. 1. 4. 13:14
겨울 허수아비 /엄기창
빈 들에
바람의 살 내음이 가득하다
하루의 일 다 마치고 황혼을 바라보는
아버지 야윈 뒷모습 같은 허수아비.
나는 저녘 들풀들의 신음마저
사랑한다.
박제로 남아있는 풀벌레소리들의
침묵도 사랑한다.
황금빛 가을에 이루어야 할 삶의 과제들
모두 마치고
부스러져야 할 땐 부스러지는
저 당당한 퇴임
눈부신 정적의 틈을 비집고 들어온
먼 산사 범종소리 들을 채우면.
수만개의 번뇌처럼 반짝이는 눈발
눈발 속으로 꺼지듯 지워지는 허수아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