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걸리 소동/화백문학,2017,겨울호
막걸리 소동
나는 술을 무척 좋아한다. 특히 막걸리를 좋아한다. 내가 처음으로 술을 먹었던 것은 초등학교 때이다. 어머니는 드물게 디딜방아에 곱게 빻은 누룩으로 술을 빚곤 하셨는데 가끔 입맛이 없다고 하시면서 술에 사카린을 타서 찬밥을 말아 드셨다. 옆에 있던 나는 어머니가 드시던 술에 말은 밥을 몇 숟갈씩 떠먹어 본적이 있었다.
집에서 놀던 어린 농사철이면 종종 술심부름을 하게 되었는데,
부모님과 동네 일군들, 형들은 모두 저녁 늦게까지 농사일을 하시느라 정신이 없으시고, 집에 혼자 남아 친구들과 신나세 뛰놀던 나는 저녁 어스름 되면 부엌벽에 걸린 2되들이 누런 양은 주전자를 들고 집에서 시오리 떨어진 면소재지 양조장으로 걸어가서 술을 받아오곤 하였는데, 그때 호기심으로 가끔씩 주전자에 입을 대고 조금씩 맛을 보곤 했었다.
5학년 때에는 술 받으러 가면 자주 주전자에 입을 대고 술을 빨아 먹었다. 그러다 주전자 뚜껑을 열어보고는 놀란 적도 여러 번이다. 주전자가 움푹 들어간 것이다. 나는 얼른 도랑물로 주전자를 처음처럼 가득 채웠다. 집에 돌아가면 술을 쏟았다고 야단을 맞았기 때문이었다. 이런 날은 일꾼들이 여지없이 술이 싱겁다고 이구동성으로 한마디씩 하였다.
여름 어느 날도 여느 때처럼 주전자를 들고 술을 받으러 양조장으로 갔다.
양조장 주인이 뭉쳐준 술밥을 맛있게 먹으면서 집으로 돌아오는데 날도 뜨겁고 고슬고슬한 술밥을 한뭉치 먹으니 배도 부른고 목이 말랐다. 나는 도로변 나무밑에 앉아서 주전자에 입을 대고 막걸리를 빨아 먹었다. 주전자가 꾀 많이 비어 있었다. 다시 도랑물로 채우고 집을 돌아오는데
머리가 어지럽고 몰롱하였다. 겨우 겨우 집에 도착하자마자 주전자를 마루에 내 팽개치듯하고 집 뒷곁 장독대옆 감나무 아래서 가서 쓰러져 잠이 들었다. 컴컴해서야 들일을 마치고 돌아오신 어머니가 부랴부랴 저녁상을 차려내고 어머니와 형들이 총동원되어 어린 내가 안보인다며 다 찾아 다니시며
한바탕 난리가 난 모양이었다. 나는 장독대 옆에서 두어시간을 자고 잠에서 깨어나 어머니 앞에 나타났다. 어머니는 저녁 안 먹고 어디를 그리 쏘다니냐며 아단을 치셨다. 나는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내가 막걸리를 좋아하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