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산마을 詩情 산책/내가 사랑하는 詩

울지 않는 입술 /박소란

산마을 풍경 2017. 6. 13. 15:36

울지 않는 입술

박소란

  

 

 

 

입술을 주웠다

반짝이는 입술이었다

언젠가

참 슬픈 노래로군요, 말했을 때 그 노래가 흘리고 간 것은 아닐까

넌지시 두고 간 것은 아닐까

서랍 깊숙한 곳 아무도 모르게 숨겨 둔 입술

취해 돌아온 날이면

젖은 손으로 입술을 꺼내어 한참 동안 어루만졌다

컴컴한 귀를 두고 입술 앞에 무릎 꿇기도 했다

노래하지 않는 입술, 나를 위해

울지 않는 입술

입술에 내 시든 입술을 잠시 포개어 보고도 싶었지만

그만두었다

그 붉고 서늘한 것을

돌려주어야지 슬픔의 노래에게로 가져다주어야지

내 것이 아닌 입술

여느 때와 같이

침묵의 안간힘으로, 나는

견딜 수 있다